진보너머 논평
20대 남성 72.5%, 30대 남성 63.%(출구조사)가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한 결과를 두고 며칠째 화제입니다. '내 이럴줄 알았지'같은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극우적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에 일관된 비판을 이어온 진보너머는 선거후 수 많은 해석투쟁의 홍수속에 2가지만 정리하고자 합니다.
1. 극우적 페미니즘과 함께한 민주당의 자업자득
민주당 내 여전히 현실도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동산, 위선, 내로남불만으로 20대 남성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애타는 시도입니다. 최근 수년간 온라인 상을 가득 매웠던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소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없었습니다. 정부 초반 70~80%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가 지금 가장 강력한 비토세력이 된 20대 남성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이들이 아닙니다. 일베와 같은 한줌의 패륜적 남초 커뮤니티 탓만 하기에는 훨씬 광범위한 세대적 여론입니다.
워마드가 주도한 혜화역 시위에 정부가 나서 굴종적 태도로 힘을 실어주고, 국민연금을 동원해 윗세대 성별불평등의 책임을 청년세대에게 떠넘기는 여성할당제를 장려했습니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메갈리아=워마드'를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젊은 남성을 '유충'으로 묘사하는 워마드 류의 혐오주의자들이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받아 순회강연을 했습니다.
여가부는 여자 아이돌 옷차림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유튜브를 모니터링하겠다고 하고, 청년을 대변하겠다며 발탁된 민주당의 청년 최고위원은 리얼돌 규제나 아이돌 의상코드 규제에 열을 다하며 시민적 자유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거 다 누가 한 일입니까?
이 와중에 정작 성추문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민주당 진영의 인사들이 '역사의식 없다, 경험치가 낮다'는 식의 되도 않는 훈수나 늘어놓으니 22%도 아깝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20대 남성들은 과거 가부장제의 특권을 누리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누군가에 대한 특별한 우대정책이 아니라 '공정한 룰'이 보편화된 세상을 원할 뿐입니다. 공정의 가치를 지키기는 커녕 4050 남성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속죄의식에 동참하길 강요하는 진보꼰대들에게 젊은 남성청년들은 질릴만큼 질렸습니다.
그래서 자업자득입니다. 그만할때까지 성찰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면, 2030 내부에 강력히 작동하는 젠더갈등의 실체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극우적 페미니즘과 단절하고,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부터 마련하기 바랍니다.
2. 20대 남성 대변한다는 하태경, 이준석의 페미니즘 비판은 진영논리 앞에서 멈춘다
청년 남녀가 대립하는 정체성 정치의 잘못된 구도에 숟가락을 얻는 하태경, 이준석 등의 선택적 페미니즘 비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대 남성의 마음을 얻겠다며 페미니즘 비판에 열을 올리더니 박원순 시장을 공격할때는 그간 여성계가 남용해온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라는 마법의 칼을 휘두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가 결국 박 전 시장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왔듯, 정치투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그 얄팍함과 철학의 빈곤이 언젠가 청구서로 날아들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청년들,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진보너머는 페미니즘도 안티페미니즘도 아닌, 정체성 정치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개혁을 지지합니다. 청년 남녀를 갈라치고 반목하게 만드는 모든 정체성 정치의 악폐습을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정부여당이 그동안 보여온 검찰 개혁의 의지 그 이상으로 부동산 개혁과 청년 일자리 및 소득정책에 열의를 보일 때입니다. 앞으로도 진보너머는 공공주택 확대 등의 보편적 사회서비스 정책과 일자리 보장제 등 청년과 노동자에게 힘을 싣는 개혁 노선에 함께하는 동시에, 페미니즘 일각의 검열주의와 갈라치기 노선에도 단호히 맞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