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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r 03. 2021

방송쟁이로 산다는 것

스무 살, 학교 아나운서로 시작해 벌써 7년 차. 방송이 전부였고 곧 세상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생겨난 습관들이 있다.


더운 여름날에도 정말 못 참을 정도가 아니면 차가운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입을 마르게 하는 커피, 녹차는 방송 전에는 금물이다. 

재채기를 하거나 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뜨거운 물부터 찾는다. 

찬바람이 불면 거의 폴라티, 머플러와 혼연일체.


목소리로 세상을 사는 나는 필사적으로 내 소리를 지켜야 한다.




타고나길 미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내 원래 소리는 아성이 강하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편하게 대화할 때면 가끔 

"이렇게 아기 같은데 방송할 때 나오는 사람은 누구야?" 하고 묻는다. 

맞다. 뉴스를 할 때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온다. 다들 다른 인격체가 왔다 가냐고 물을 정도.

(사실 이건 대학생 때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낸 소리다.) 


라디오 DJ를 할 때는 조금 더 편안하고 둥근 소리를 내야 한다. 

대신 발음은 더 정확하게, 호흡은 더 신경 써서. 

'나는 괜찮으니 내가 너의 얘기를 들어줄게' 하는 주문과 함께.


그런 방송쟁이에게도 고충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다는 것

울면 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그 여운이 내레이션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뉴스에는 최악이다. 

그래서 6년 가까이 직접 방송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도 감정 컨트롤이다. 

평온함이 흔들리는 순간 방송 전체가 영향을 받기에 정말 너무 울고 싶은 날엔 마지막 방송 스케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멘트가 끝나고 마이크가 꺼지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하염없이 보면서.


제발 한 시간만... 제발 30분만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니까. 감정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혹여나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을 대비해 반드시 필요한 연습은 그 흔들리는 감정을 들키지 않는 것이다. 

가끔은 글만 쓰는 사람이나 신문 기자가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목소리의 물기를 들키지 않을 테니. 





방송쟁이인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있다. 

방송 실수? 마감시간을 못 맞추는 것? 지각? 그 무엇도 아니다. 

바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아무리 기사를 잘 쓰고 원고를 잘 써도 목소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동안 끊임없는 방송에 목은 정말 상할 대로 상했다. 병원에 가도 답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약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것에서 멈춰 서고 목소리 회복에 집중한 게 거의 6개월. 

겨우 좋아졌는데 상태가 다시 망가지는 데는 고작 1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갈라지고 목이 잠기고 따갑고. 뜻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에 카메라가 또다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겁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겨우 한 달밖에 버티지 못한 내 목소리와 체력을 탓했고, 나를 이렇게 다시 만든 상황에 화도 났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에는 나도 모르게 길바닥에서 엉엉 울어버린 날이 있었다. 

그날은 정말 모든 것들에서 지치고 질려버린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일주일 내내, 아니 거의 한 달을 꼬박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서 예민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 

정확히 무엇이 억눌렀던 내 감정을 건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나는 심지어 선배 앞인데도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엉엉 울어버렸다(세상에... 맙소사... 정말 최악이야). 


한참을 진정을 못하다가 나중에 돌이켜보니 나는 아마 그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서워서, 그럼에도 일은 끝이 보이지 않아서 모든 것들에 대한 무서움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살면서 지나온 날들 중에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날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언니의 모친상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중요한 무대 리허설 중이었고, 충분히 슬퍼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 섰다. 


그때의 행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런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은 건 

그때 장례식장에 바로 달려가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 순간 화려한 조명 아래서 웃었던 나에 대한 원망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퇴근길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고 내 목소리를 바쳐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그 고민을 하면서 오늘도 나는 울지 않고 방송을 마쳤다. 나는 오늘도 방송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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