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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y 20. 2022

위로하는 법을 모를 땐

우리, 그저 하루를 살아내자

누군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 언제냐고 물을 때면, 조심스럽게 답한다.

"위로를 해야 할 때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어른을 위로한다는 것,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인사가 나는 시기가 다가오면 출근하기가 그렇게 싫다. 어수선한 분위기, 그럼에도 일은 해야 하고, 막상 일을 손에 잡자니 당장 내일의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애매한 시기. (여기서 인사 발표가 밀린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먹구름 가득 낀 시기가 지나고 모두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인사가 나면 희비가 엇갈린다. 승진을 기대했지만 올라가지 못한 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한다. 가고 싶던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승진을 한 사람들은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는 듯 얼굴에 꽃이 핀다.


상반된 온도의 공기가 공존하는 그 시공간에서 승진과 상관없는 뽀시래기 막내가 하는 일은 그냥 침묵을 지키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출입처, 맞선임, 팀장. 이 세 가지가 달라지지 않는 한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문제는 그다음이지. 고기압과 저기압이 충돌하면 비가 내릴 텐데... 이를 어쩐담.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비 피하는 방법


신입 때는 나만 잘하면 된다. 어차피 내게 다른 사람까지 씌워줄 핵우산 같은 건 없으니. 그런데 연차가 올라갈수록 주변이 보인다. 미처 우산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보인달까. 우산도 없이 그저 버티며, 오롯이 견뎌내며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이. 이들은 딱히 비를 피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질문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우산이 어딨는지 모르나? 나보다 똑똑한 선배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옆에 가서 내 거라도 같이 쓰자고 해야 하나? 그치만 그만큼 친하진 않은데...' '그냥 모른 척해주는 게 도와주는 건가...'

망설이고 주저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한 나의 고민도 계속됐다.


위로하는 방법을 모를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답을 찾은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의 어느 일요일이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기 전에 마지막 주말근무를 하면서 못다 한 마음이 밀려온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위로, 그거 꼭 해야겠다고.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편지 쓰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다이어리엔 항상 편지지나 엽서가 끼워져 있다. 아무 뜻 없이 가지고 다니던 보라색 엽서가 그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꺼내 조용히 적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위로의 말없이 그냥 솔직하고 수수하게.


인생을 겨우 27년밖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아직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지만 선배는 내 꿈이었다고. 내가, 내 자리에서, 내 방식대로 버티고 있듯이, 선배도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티길, 항상 응원한다고.


빈자리 키보드 밑에 엽서를 끼워 넣으면서 그렇게 마음이 후련할 수 없었다. 위로하는 방법을 모르겠으면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였는데. 아니, 애초에 위로라는 게 꼭 거창하고 대단한 말로 '괜찮아'를 해주는 건 아닐 텐데.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했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답장이 왔다.

"그래, 나는 내 방식대로 버티고 있을게. 너도 네 자리에서 버텨내길."



비가 언제 그칠지는 스물일곱 살도, 마흔도, 반백 살도 모른다.

오히려 나이 들 수록 배워가는 건 날씨는 사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일까. 위로의 방법도 세월을 닮아 변해간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에서 '우리, 지금,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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