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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pr 05. 2021

뉴스 하는 네가 행복하길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행복하고 싶은 나에게


그때, 너한테만 유독 모질어서 서운했니?



어느 가을날. 여의도에서 만난 교수님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날은 교수님과 내가 '스승과 제자'에서 '선배와 후배'로 새롭게 마주한 첫날이었으며, 스물셋 대학생에서 스물넷 직장인으로 나의 스승을 마주한 어색한 순간이었다.



휴학 한 번 없이 스물세살에 취준생이 되었던 나는 많은 것들에 지쳐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계속 해온 방송일은 익숙하면서도 확신이 없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을까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또 그때는 이 길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만 같아서 이제 와서 다른 걸 준비하기에는 늦었다는 불안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충분히 늦지 않았던 것 같지만.)


불안과 두려움, 아쉬움, 설렘. 이 많은 이유들 속에서도 정말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때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덕'이기도 하고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나 4학년 1학기에 나를 맡았던 교수님은 내게 유난히 모질었다. 매 레슨 때마다 받았던 피드백을 기록해놓는 연습 일지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와....레슨 때마다 안 운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아프고 속상하고 서운하고.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었던 선생님들. 그들에게 들은 수많은 말들 중에서도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 몇 마디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거였다.


너 뉴스 왜 하니?



레슨 하다가 갑자기 뉴스를 왜 하냐니... 당황해 대답을 머뭇거리는 내게 교수님은 다시 물었다.

면접 때 답할 그럴듯한 이유 말고, 정말로 솔직하게,

너 뉴스 왜 하냐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거창한 이유 말고, 면접 때 답할 그럴듯하게 외운 답 말고, 정말로 나는 뉴스를 왜 하는 걸까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답을 못하자 교수님은 말했다.


뉴스 하는 네가 행복해야 해.
그런데 네 얼굴은 지금 하나도 행복해 보이질 않는구나



그 날, 나는 강의실을 나오면서 참았던 눈물을 결국 터뜨렸다.

꽃이 만개하고 날은 맑은 화창한 날이었는데 그토록 예쁜 우리 학교 캠퍼스 한복판에서 나 혼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몇 달 뒤에 내가 바로 입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때 방송을 접었을 거다. 행복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스물셋 가을. 합격 소식이 갑자기 찾아왔던 그때 나를 가르친 많은 선생님들은 나보다 더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반대로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진짜? 정말로? 학교에 이제 못 온다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회사에 들어가 우당탕탕 요란한 적응기를 거치며 학교가 너무 그립던 어느 날, 반가운 연락이 왔다. 특히나 내게 그렇게 모질었던 그 교수님에게서. 그렇게 교수님과 나는 입사를 한 지 1년이 채 안됐을 즈음, 다시 만났다. '교수와 학생'에서 '선배와 후배'로.


다시 마주한 여의도 한 식당에서 교수님은 나를 보고 그저 웃었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그때, 그렇게 너를 많이 혼내던 시절에 콕 집어 너한테만 모질어서 서운했냐고.


나는 또 대답을 못했다.

아니라고 하기엔 서운했던 감정이 없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또 그냥 서운한 꾸지람으로 받아들이기엔 막상 직장생활을 해보니 그건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다. 뉴스 하는 내가 행복한지, 정말로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어 하는지.


모든 취업준비생에게 반드시 고민해보길 권하는 부분이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꿈, 진로. 다 좋은데 그게 대체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찾는 것.

그게 없으면 막상 일을 시작해서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때, 그 학교에서, 그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유일한 학생이었단다"

다시 만난 그 날 교수님은 내게 애정 어린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뉴스 하는 당신의 제자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캠퍼스 안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던 시절.

학교 담장 밖에는 그동안 꿈꿨던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순수하게 설렜던 시절.


그때의 내게 누군가는 졸업 전에 반드시 취업을 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누군가는 너는 방송에 재능이 있다고 세뇌시켰고,

누군가는 너는 신념이 강하니 기자를 잘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반대로 누군가는 너는 기자를 하기엔 너무 여리니 아나운서를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했던 한 선생님은 그랬다.

무엇이든 잘할 테니 그저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회사에 가는 것도, 갑자기 기자가 되는 것도 모든 게 어색하고 두려웠던 그때의 나에게도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의 나에게도 그 한 마디는 여전히 큰 위로다. 살다가 혹여나 그 길이 틀렸을지라도, 괜찮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설령 오늘이 조금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내일 하루는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하길 꿈꾸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수많은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꼭 건네고 싶은 위로.

.

.


다 괜찮아요.

무엇이든 괜찮으니

그저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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