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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y 09. 2022

좋은 선배가 되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22.4.24 오프닝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건,
퇴근하면 이불 속에 들어가 책만 보는 건,
쉬는 날마다 꽃집을 찾는 건 ,
현실이 벅차다는 시그널이었다.     

외면했던 시그널은 결국 슬럼프로 나를 찾아왔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한다.     

나를 참 많이 찾는 우리 삐약이에게
혹여나 나의 우울함이 옮지 않게.     

UP & DOWN   

삐약이는 말한다.
저는 선배처럼 되는 게 꿈이라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이에게 바라던 딱 하나,
'혹여나 나 때문에 힘든 날이 없기를’     
나는 좋은 선배인지, 잘 가르쳐주고 있는지 매일이 의문이지만 어쨌든 나의 바람 하나는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보고 맑은 꿈을 꾸는 것처럼
나도 다시 그렇게 꿈꾸고 싶은
스물일곱 114일째

여기는 뮤직트리 1003 일요일  
저는 서효선입니다.  

거칠고, 무뚝뚝하고, 위계질서가 강한 기자 조직.

이 조직이 후배를 가르치는 방법은 일명 '도제식 교육'이다.


도제식 교육 (徒弟式敎育)

 스승이 제자를 기초부터 엄하게 훈육하는 일대일 교육 방식. 제자는 오랜 기간을 스승과 함께하면서 스승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내가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조직이지만 사실 내 성격과는 정말 맞지 않는다. 특히 저 '엄하게'라는 말.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온도차가 확실한 사람이다. 내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그다지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달까. 그러다 보니 후배들한테 화나는 일 자체가 별로 없다. 사람들은 내가 성격이 좋아서 화를 안 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관심이 없어서 화낼 일도 없는 편에 가깝다. 혼자 내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성격 덕일까. 오히려 후배들이 나랑 친해지려 먼저들 다가온다. 귀여운 우리 막내들은 내가 자리에 앉아서 일하고 있을 때면 총총 찾아와 말을 걸기도 하고, 언제 시간이 되냐며 같이 밥 먹을 날짜를 잡고 신이 나 돌아간다. 특히나 올해 초에 내 직속으로 온 우리 삐약이, 지분 제일 많다:)


삐약이는 나랑 밥 먹는 것도,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참 좋아한다. '자기 사수랑 밥 먹는 걸 좋아하는 게 가능한가' 처음엔 의문이었다. 워낙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군기를 잡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굳이 트집을 잡아서 화낼 필요는 없으며,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건 아니니. 오히려 감사하다. 나이가 들 수록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으니까.




삐약이가 발령난지 얼마 안 되던 날, 그리고 처음으로 후배가 내 앞에서 울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엄하게', '훈육'하기보다는 조용히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가장 잘못한 건, 일이 끝나기 전에 눈물을 보였다는 거예요.


그냥 "울면 안 돼, 네가 애야?"라는 호통보다는, 아직 마스터가 나오지 않았는데, 확인하고 결정해줘야 할 것들이 쌓여있는데 울고 있으면 안 된다는 설명. 다 끝나고 회사 문 열고 나가면서, 집 가는 버스에서는 울어도 괜찮은데 적어도 지금은 울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나의 조언을 고맙게도 나의 후배는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우리 삐약이는 적어도 근무시간에 울진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야 많이 우는 것 같지만...)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취업 준비할 때 그렇게 많이 공부했는데 왜 여전히 모르는  투성이고, 내일 또 뭘 잘못하면 어떡하지 하루하루 불안한 날들. 그래서 굳이 후배들에게 나까지 모질고 싶지 않다. 나 말고도 무서운 선배는 많으니까. 그냥 가끔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사달라고 찾아올 수 있는 선배, 그 정도면 과분하지 않을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30대,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을 후배로 맞으면서 '나만의 겸손'으로 약속한 게 있다. 나이 삼십 줄에 접어든 성인이 울 땐 얼마나 속상하면 그럴까, 오죽하면 그럴까 공감하기. 그게 이들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또 하나.

'하루에 하나 이상은 칭찬해주기'


오늘은 어제보다 기사가 깔끔해졌다거나, 밀린 일을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했거나, 하다못해 오늘은 밥을 잘 먹었다고 따뜻한 시선과 말을 선물해주기. 칭찬이 어색해진 요즘 세상에서 더더욱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없어도 혼자서 스스로 칭찬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당신의 반짝이는 눈빛을 진심으로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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