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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r 18. 2021

엄마는 네 인생이 참 재밌어

내가 최선을 다해 살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 엄마는 딸에 대한 만족감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일단 돈 주고도 못 사는 딸의 키를 174cm까지 키웠다는 것에 매우 만족해한다. 가끔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엔 내가 예쁜 옷을 입는 것도 정말 좋아하신다. 엄마가 사준 옷이 나한테 잘 어울려서 그러는 건 '뭐 그런가 보다' 싶기도 하겠는데, 내 돈 주고 내가 산 옷을 입은 날에도. (엄마... 이거 내가 산 건데...?)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딸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우리 엄마는 딸 인생에 걱정이 없단다. 그랬던 엄마는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속상한 날들이 많았다. 어느 날은 전화 통화를 하는데 그랬다. 


부족한 거 없이 키웠는데...
회사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서 엄마 마음이 참 아파...

부족한 것 없이 나를 키운 우리 부모님은 내가 기자가 되길 단 한순간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그다지 힘들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적당한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길 바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하는 교수가 되길 바랐고, 아빠는 공무원을 시키고 싶어 했다. 둘 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반대인. 아마 두 분의 바람이 그랬던 건 내 딸이 귀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일 거다.


타고나길 몸이 약한 나였다. 

고등학교 때는 1년에 한 번은 꼭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위장이 약해서 방부제가 많이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도 잘 못 먹는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외식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그대로 다 게워내기 일쑤다.


이런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 많은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잠을 못 잤고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기본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면역 체계가 무너졌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지난해는 일을 많이 줄이고 건강 회복에 집중했지만 새해 들어 다시 일이 늘면서 그동안 겨우 나아진 것들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 고작 3달도 안 되는 시간에.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갑자기 코피를 쏟아서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다 출근했으니. 말 다했지 뭐. 입은 다 헐었고 갑자기 눈 앞이 뿌얘지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이 미안했다. 

출근도 퇴근도, 주말도 휴일도 없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나를 멈칫하게 하는 감정은 분명 '미안함'이었다. 정신없이 신문을 보며 숨 가쁘게 움직이는 출근길에도, 터벅터벅 집에 걸어오는 퇴근길에도. 엄마 아빠가 바라는 인생과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냥 미안했다. 부모님 뜻을 거스르고 선택한 길이니 차라리 행복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너무 힘들고 지치는 시기에는 더더욱 미안했다. 누구보다 딸의 행복을 바랐던 부모님이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나보다 더 아파할 걸 아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했으니까. 힘들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언론인으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매 순간 당신의 딸이 반짝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내 모습을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며 '엄마는 네 인생이 참 재밌다'는 나름의 위로를 건네는 엄마를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 밖에 못하는 아빠를 위해서.


그래, 나 역시 그저 부모님 인정이 제일 받고 싶은 평범한 딸에 불과하니까.



가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내가 부러워서 '너는 뭐가 걱정이겠어, 행복하지?' 묻는 사람도 있고, 갈수록 야위는 내 모습에 '후회... 안 해...? 너 지금 진짜 행복한 거 맞아?' 묻는 사람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답하기 쉽지는 않다. 


그런데요. 어떻게 모든 순간 행복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누군가 내게 "행복해?"라고 물었을 때 활짝 웃으면서 "응 나 지금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적어도 최선을 다했던 이 순간들에 후회는 없을 거예요.

매 순간, 사랑했거든요. 모든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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