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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07. 2021

걸어 다니는 자기계발서

누구 하나쯤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다면

어느 홍보팀과의 식사. 마주한 상대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기자님, 자기 계발서 좋아하세요?"

순간 마지막으로 읽은 자기 계발서가 뭐였더라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고민 끝에 왜냐고 물었더니 "기자님 걸어 다니는 자기 계발서 같아요. 책이 말하는 느낌!!"


한 번은 같이 식사하던 선배들이 "효선이랑은 어떤 단어가 어울리지?"하고 묻길래 "해맑음이요... 헤헤" 답했더니 다들 한바탕 웃으면서 "그러네, 단어의 실사판이네." 하셨다.


그렇다, 내가 또 해맑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초긍정'이다.


재택근무, 안 해서 얼마나 좋아

올 상반기 명함 한통을 다 썼고, 하반기가 절반쯤 지난 지금은 명함이 반통밖에 안 남았다. 1년에 명함 두통이면 400장. 두 번째로 만나는 사람부터는 명함을 주지 않으니까 내가 1년 동안 만나는 사람들이 최소 400명, 500명 이상은 된다는 얘기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도 이만큼의 명함이 나간다는 건, 재택근무가 없다는 뜻. 업무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해서 솔직히 한동안은 방송 말고 신문사나 통신사에 취직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해맑음은 머지않아 이마저도 긍정적으로 승화시켜, '이 젊은 나이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해서 얼마나 좋아?' 하고 생각하게 했다. 옆에서 선배가 들었다면 '많이 힘들구나...?' 물었겠지만.


이 나이에 재택 안 하고
여기저기 구경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아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화가 나는 날도 있고 속상해서 눈물 나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는 또 혼자서 한창 울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더라도 욕설을 입밖에 꺼내거나 술을 찾는다거나 하는 대신 "그래서 진짜 너무 속상했지 뭐야" 하고 만다.


달래줄 친구가 없으면 바람 쐴 겸 나가서 내가 좋아하는 녹차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오기도 한다. 단순해서 이거 하나면 기분이 금방 좋아질 거라는 걸 아니까. (어느 정도냐면... 어릴 때 동생은 아빠가 녹차 아이스크림 사주면 금방 기분이 풀리는 나를 보고, 누나는 나중에 녹차 아이스크림 사주는 사람한테 시집갈 거라고 했다ㅎㅎ)


많은 분들이 말한다. 집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란 게 느껴진다고.

처음에는 왜 그렇게 보시는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만큼 밝은 에너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것도 밝은 모습이 많다.


한 번은 두 번째로 찾은, 그러니까 처음은 아니지만 낯설기는 한 사무실에 갔는데 안내데스크에 계시던 분이 날 보자마자 "이쪽으로 오세요"하셨다. 순간 당황해서 "저 기억하세요?" 물었더니 "그럼요, 여기서 아마 모르는 분 없을 텐데." 하셔서 괜히 민망했다. 여자 치고는 키가 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자 치고는 텐션이 좋아서 많은 분들이 기억을 잘하시나보다.


해맑음의 출발점은 어디냐면요

이쯤에서 다들 궁금해하는 것. 과연 나의 해맑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누구를 만나든 나도 모르게 생글생글 밝은 건 사실 엄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 엄마는 진짜 불만이 없다. 나보다도 훨씬 더. 가끔은 뭐랄까. 세상만사에 통달한 스님 같다. 부정적인 얘기는 입밖에 꺼내지 말라는 가르침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익숙해졌다. 남들과 비교할 것 없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욕심도 없이 그냥 차근차근하면 된다고. 어릴 적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엄마가 직접 데리고 같이 놀아주면서 가르쳐준 거다.


남들과 비교할 것 없이
그냥 차근차근하면 된단다


한 번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친구들이 칠판에 구구단을 쓰고 노는 게 재밌어 보여서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나도 구구단을 가르쳐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말했다. "구구단 몰라도 시험지 푸는 데 아무 문제 없을걸? 때 되면 선생님이 알아서 가르쳐줄 거야." 그래도 나도 미리 배우고 싶다고 몇 번을 졸랐는데 엄마는 얼마 안 하는 벽에 붙이는 구구단 표도 안 사줬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 지금도 핫한 사교육은 내가 어릴 적에도 '영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열풍이었는데 엄마는 이것도 안 시켰다. 가끔은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영재 학원 차를 타고 공부하러 가는 걸 보면서 저기 가면 뭐 배우지? 이런 호기심에 "엄마 나도 갈까?" 떠봤지만 엄마는 꿋꿋했다. 그거 안 해도 된다고. 엄마는 안 불안한가, 그러다 나 시험 못 보면 어떡하지? 내가 더 걱정이기도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나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서 전혀 안 불안해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학원에 다니고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 오후, 한창 친구랑 통화하다가 친구가 너무 재밌어하길래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나랑 통화하면서 오늘 제일 많이 웃었지?"

친구가 1초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


그래 그거면 됐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긍정적인 기운을 얻어갈 수 있다면.


세상에 웃을 일이 많이는 없겠지만 나름 '해맑음의 실사판'인 내가

하루에 누구 하나쯤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뿌듯하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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