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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Feb 17. 2021

무례한 당신, 정말로 사양합니다

어느 날 걸려온 친한 선배님 전화. 


효선아, 00이랑 친하다며? 얘가 밥 사달라는데 너도 같이 와!


당황스러운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커피 한 잔 안 해본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친하다'라는 단어를 쓰다니. 한 3초 정도 고민하다 답했다. "선배님, 죄송해요. 따로 뵙는 게 좋겠어요. 저 그분이랑 커피 한 잔 안 마셔봤어요."


나를 아는 사람이니까, 내가 이렇게 답할 정도면 정말 불편한가 보다 하고 이해해 줄 선배였으니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선배님도 웃으면서 그랬다. "너 진짜 솔직한 거 하나는 알아줘야 돼."


하지만, 모든 사람이 편한 건 아니기에 이런 순간은 몇 번을 겪어도 당황스럽다. '친하다'라는 단어로 일방적으로 관계를 규정짓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건 왜 항상 내 몫인 걸까. 그런 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 

"저기요, 무례하시네요. 선 지켜주세요."



'친하다' 결코 쉽게 꺼낼 수 없는 말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하다는 말을 듣는 게 불편한 이유는 겪을 만큼 겪어봤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내게 많이 하는 말은 "너는 뭐 어디까지 친해?"였다. 특히나 비아냥 거리듯이 말할 때는 어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는 친하다고 말한 적 없는데 대체 누가 나랑 친하다는 걸까, 친하다의 기준이 뭐길래 저렇게 쉽게 친하다는 말을 쓰는 걸까.


정말 친한 사람들은 '친하다'라는 말을 쉽게 타인에게 꺼내놓지 않는다. '우리 친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주한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 관계의 끈끈함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을 둘러싼 온기가 자연스럽게 그걸 증명한다. 반대로 어떤 관계를 '친하다'라고 섣부르게 포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 이야기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걔랑 친한데~, 내가 걔를 좀 아는데~, 걔 알고 보면 좀 이래..." 하면서 쉽게 타인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


그렇게 쉽게 떠드는 이야기는 반드시 당사자 귀에 들어간다. 그래서 나를 6년 넘게 봐온 비타민 언니는 그랬다. 어디 가서 친하다는 얘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타고난 성격이 본래 남 일에 관심 없는 성격이다. 무관심하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20대에 접어들어서는 연습도 많이 했다. 타인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는 연습, 좀 손해 보더라도 이타적이려는 연습, 따뜻해지려는 연습. 그러다 보니 지금 내 신조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만큼은 잃지 않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다른 제 3자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만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대는 아마 영영 오지 않겠지. 그래도 나만큼은 온기 가득한 찻잔을 앞에 두고 차가운 험담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내 인생에 대한 고민만으로 머리는 충분히 아프다. 마주 앉은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기에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충분히 짧다는 걸 다들 알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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