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식사 자리. 맞은편에 앉은 내 눈을 빤히 보며 50대 공무원이 말했다.
기자님, 내가 기자님 또래 사회 초년생들 보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맷집도 경쟁력이에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기사. 아빠 뻘의 취재원이었던 그는 내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공무원과 겹쳐 보였는지, 아니면 정말 딸처럼 여기는 마음에 그랬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술잔을 기울이면서 조곤조곤 얘기를 이어갔다.
일찍 취업을 한다는 건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집안에서 받쳐줄 만큼 받쳐줘서이지 않냐고. 평생을 보호 속에서만 살아왔던 청년들이 사회에 처음 나오면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 게 당연한 거라고. 나만 적응을 못하는 것 같고,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 같고, 같이 입사한 동기는 옆에 팀에서 예쁨 받고 사랑받는 것 같고, 나 홀로 세상에 외톨이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안타까운 건 그 결정이 자살이라는 것. 차라리 예전처럼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속을 털어놓고, 필요하다면 엉엉 울고 토닥여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혼자서 외롭게 죽음을 택한다고.
그러니 기자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버텨요. 맷집도 경쟁력이니.
얘기를 듣는 내내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다. 그날은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도 꽤나 고된 하루의 끝이었으니까. 집에 가면서 생각했다. 아마 그의 마음은 우리 엄마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회사에 들어가고 계속해서 살이 빠지고 너무 많이 우는 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는 말했다.
"부족한 것 없이 키웠는데... 엄마는 너만큼 가졌으면 참 행복할 것 같은데. 회사만 가면 너무 힘들어하는 내 딸을 보면서 엄마 마음이 아파."
아마 모든 사회초년생들 부모님 마음이 다 이렇지 않을까.
살면서 처음 내 아들딸이 겪는 차디찬 세상을 어떻게 대신 겪어줄 수도 없고 막아줄 수도 없어서
그냥 한 발짝 뒤에서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
다음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사러 카페를 가는데 복도에서 엉엉 울고 있는 여자분이 보였다.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의 사회 초년생. 마주 앉은 사람은 직급이 좀 더 높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투자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 안 나와요."
대답으로 차라리 어떤 말이라도 들렸다면 나았을 텐데. 들려오는 건 말이 아닌 세상 서러운 울음소리뿐이었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직접 휴지를 건네주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는 것 밖에 없었지만... 속으로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요, 나도 많이 서툴거든요. 저도 며칠 전에 집 가면서 울었어요. 울고 나면 조금 괜찮아져요.'
나만 못하는 것 같고, 나만 서툰 것 같은 하루의 끝에 나의 은인들은 말한다.
괜찮아, 그러니까 아직 3년 차지.
괜찮아, 가끔은 울면서 찾아오라고 선배 있는 거지.
괜찮아, 너는 오늘도 충분히 반짝였단다.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또 하루를 살고, 한번 더 일어섰다.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내 맷집이 되어 나를 버티게 해 줬다.
그러니 부디 이 땅의 모든 사회 초년생들.
삶을 포기하지는 말아요.
조금 서툴러도 당신의 하루는 충분히 빛났으니.
당신의 내일은 분명히 반짝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