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꽤나 잘 견디는 편이다. '모든 순간마다 배우는 게 있겠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이 오는 거겠지, 지나고 나면 한 뼘 더 성장해있겠지.' 생각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혼자만의 세계로 파고든다.
찾으면 한결 나아지니까. 이 시간 속에서 배워야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을 못 찾던 스물여섯. 가족만큼 친한 언니에게 커피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털어놨다.
"너무 힘들거든, 근데 대체 여기서 뭘 배우려고 이만큼 아픈지 모르겠어." 언제나 그랬듯 어른스럽고 현명한 답을 알려줄 줄 알았던 언니는 정말 간단하고, 어찌 보면 가장 옳았을 답을 내놨다.
"없어. 가끔은 아무것도 배울 게 없는 시간도 있는 거야."
답을 찾지 않으면, 복잡한 문제와 관계에 분명한 매듭을 짓지 않으면,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에게 완벽한 해결을 주문한 적이 없는데. 엉켜버린 실타래를 완벽히 풀어내지 못하고 그만두면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거라고 스스로를 몰아갔다.
그리고 결국,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어느 날. 숨이 막히고 머리가 울리고, 이러단 정말 내가 어떻게 될까 봐 결국 다 내려놓고 도망쳤던 날. 손에 쥔 우산조차 버겁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도 안 나던 어느 금요일, 현관문에 기대 주저앉으면서 깨달았다. 좀 포기해도 세상 끝나지 않는다는 걸.
물론 그 후로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설마 내가 이렇게 한순간에 포기할 줄 몰랐으니 스스로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첫 번째.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낯섦이 두 번째.
결국 이렇게 포기해버릴 거 그동안 울며불며 버틴 시간이 아까웠던 건 물론이고, 이왕 이렇게 될 거 하고 싶은 말이라도 다 할걸 뭐 이런 온갖 잡생각이 몰려왔다.
그리고 후회했다. 혼자서 버티고 견딘 그 시간 동안 다쳐버린 나를 진작에 알아봐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겠다고 덤빈 그 용기는 분명 가상했다. 그건 후회를 안 했는데...너무 힘들면 빨리 그만뒀어야 했는데 괜한 오기로 고집부린 그 시간들이 그렇게 후회가 됐다.
스물일곱. 나의 새해 목표는 그다지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기.
딱 이거 하나다.
텅 빈 다이어리로 새해를 마주하고 어느덧 한 달을 살아낸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너 요새, 한결 편안해 보인다
그걸로 됐다.
굳이 모든 일과 관계들에 완벽히 매듭을 지으려 하지 않아도,
결국 완벽히 매듭을 짓지 못해도,
내 마음이 편하면 이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