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하는 일상
유년시절마저 도시에서 보낸 내가 안타까운 이유 중 하나는 온화함이 깃든 자연풍경의 추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유년추억 추구미에 걸맞는 사람을 만나면 두말할 것 없이 앞에 앉아 턱을 괸 채 눈을 반짝이며 나는 경험하지 못한 그의 유년시절 풍경이야기에 흠뻑 빠져 든다.
입맛도 이런 내 추구미를 따라가는지 지금으로 치면 소위 시골밥상을 좋아하는 내 입맛은 벽을 갓 짚고 일어서면서부터 밥상에 놓인 된장을 찍어먹었다 하니 실로 진정한 ‘된장녀’다. 강된장에 호박무침과 호박잎이면 눈이 도는 나는 애석하게도 여전히 도시에 살고 있다.
내 아이는 시골 정취를 무의식 속에 담고 자연의 힘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기가 백일이 되기 전 시골로 거처를 옮기고 약 6년간 시골생활에 살짝 발을 담가보았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내 고향 격인 도시로 귀향했다.
내가 동경하고 추구하는 것의 절반이상이 내가 건사하기 힘든 곳에 있는 양상이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은 이렇게 달리기만 하는 내게 멈춰 서라고 했다. 나비 날듯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멈추고 나를 바라보라 했다. 멈추어 두 발을 땅에 딛고 날개를 접었다. 오랜 시간 나는 발을 딛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도 날개는 없어지지 않았다.
새로 산 신발의 끈을 다시 묶듯 처음부터 다시 구멍을 찾아 끈을 엮고 마감을 한 뒤 나아가려 한다. 예전보다는 여유 있게 묶었으니 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유방암은 림프절을 건들기에 팔 한쪽은 림프부종과 봉와직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피로감이나 압박을 주지 않아야 하며 세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어력이 떨어진 팔을 소지한 사람이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종종 잊을 때가 있지만 해당하는 팔의 솜털이 온통 서 있는 거 보면 내 몸은 이 팔을 늘 경계하며 지키려 하나보다.
청소나 요리할 때는 고무장갑을 착용해 외상을 예방하며 지내고 있다.
이제 맨손의 아쌀함이나 청량감 따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내 왼손은 무슨 생각을 할까?
덥석하고 손이 먼저 나가던 버릇은 이제 감싸고 주춤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쩌랴. 림프부종은 되돌릴 수 없다 하니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부종이 오지 않게 보호하는 수밖에.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당겨지고 밤바람에서는 제법 가을 향기가 난다. 내 피부는 계절을 알아보고 건조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른 낙엽을 닮아가는 내 피부는 충분하게 보습을 한다고 하지만 계절의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보습은 늘 부족하다.
이렇게 바짝 말라가는 계절이 오면 ‘종이’가 두렵다.
가까이하고 자주 만져 그렇겠지만 유독 건조한 계절이 오면 쉽게 종이에 지니 늘 반창고를 여분으로 가지고 다녀야 했다. 이제 봉와직염과 림프부종을 경계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내 왼손은 종이와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수술한 지 9달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무겁고 찌릿해 마치 독감주사를 맞은 다음날처럼 불편한 내 왼팔, 손톱도 여유 있게 남겨두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아끼고 보듬기를 반복해줘야 하는 내 왼팔을 보며 그래도 내 곁에 모양 갖추고 있어 주어 고맙다고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