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리고 고양이눈물

시작, 끝 그리고 급정거

by Psyber Koo

시작은 끝에 비해 알림이 명확한 편이다.

아들은 ‘냥줍’으로 사춘기 시작을 알렸다.

결혼보다 일을 먼저 시작해서일까? 업무실력과는 달리 집안일 실력은 늘지 않았고 아이가 자라며 길에서 지내는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을 표현할 때 내 마지막 멘트는 늘 “집으로 데려와서는 안된다. “였다. 안 그래도 집안일 실력이 엉망인데 식솔 보태기는 내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이므로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초등시절을 잘 보냈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그해 겨울, 그러니까 중2를 앞둔 12월. 첫눈이 대대적으로 내려 폭설을 장식한 날 하교를 하던 아이는 그간의 엄마규칙을 깨고 ‘자기 의사’를 밝히며 조막만 한 새끼고양이를 박스에 담아 왔다. 두 시간을 지켜봤는데 엄마고양이는 안 왔고 눈이 많이 왔기 때문에 해 떨어지면 얼어 죽을 거 같아서 데리고 왔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상태가 매우 조악한 새끼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오며 가족회의가 열렸고 아픈 상태이니 일단은 돌보자 하며 지낸 게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렇게 내 아이의 반란은 ‘생명사랑’이라는 대전제를 씌워 엄마규칙을 교묘히 흔들며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돌봄의 역할을 주었으나 예상했던 대로 돌봄은 내 몫이었고 아이의 사춘기는 누구나처럼 열두 고개를 넘었으나 냥줍책임이 있었는지 하루에도 스무번은 순찰하는 고양이를 위해 방문을 닫고 지내지 않고 무사히 넘겨 성인이 되었다. 상태가 나빠 두 번의 수술을 하고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고양이는 대견하게도 지금은 예쁜뚠냥이씨가 되어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사실 아이의 사춘기를 요 녀석이 책임져 준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요양하며 집순이로 지내자 고양이는 짐짓 놀랐는지 어딘가에 있다가 접견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일정한 시간에만 나와 함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루틴을 이어갔다. 그러다 요양기간이 길어지자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 기회가 닿아 다시 출퇴근을 하는 일정이 되자 루틴이 맞춰져 있는 고양이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잘 적응해주고 있다. 대견하기도 하고 짠한 맘도 들어 츄르(고양이계 치킨햄버거?)로 보상하는데-신장을 떼내는 수술을 하면서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츄르등 간식은 자제하라 하셨다- 눈에 초점을 잃고 허겁지겁 먹다 중간쯤 되면 닭똥 같은 눈물이 뚝! 하고 손등에 떨어진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나 보다. 자주 주지 않으니 더욱 특별하겠지.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에 눈물 흘리는 솔직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빗장을 풀어주어 고맙기도 하고 작은 장면에서도 가면을 써대는 사회생활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느슨해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다.


비엔날레 전시해설은 처음 하는 일이라 첫 주는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운영팀에서 정한 일정에 맞게 도슨트팀은 각기 자기 일정에 따라 정기도슨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예약된 단체 도슨트를 맡게 되기도 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다음 주가 되자 소요시간도 내용도 동선도 조금 더 매끄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통역사가 따라오는 단체는 어렵다. 내가 맡은 단체 통역사는 그 나라 사람으로 한국어에 능하지 않아서 더욱 어려웠다. 쉬운 말로 짧게 하는 게, 단순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날은 돌아와 기본 내국인용이 아닌 다른 버전 스크립트를 만드느라 밤잠을 설쳤다.

평일 대낮 내 부모연배의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내 도슨트를 경청해 주신 날, 걸음속도에 맞추느라 평소보다 10분 이상 더 걸려 1시간이 넘도록 전시설명을 하느라 다리가 저릿했는데 전시를 관람하시고 돌아서며 덕분에 하나하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며 너무 고생했고 고맙다 하시며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끌썽이시는데 그간의 일터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알 수 없는 오묘한 일렁임이 배꼽 깊은 곳에서 요동쳤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 식사 후 고양이배를 조물 거리며 ‘고양이 눈물’을 흘렸다. 그랬다. 고양이 눈물은 ‘행복’의 표현이었다. 이제 나도 츄르맛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인생이라는 열차에 올라 사이사이 역이름을 달달 외우며 그곳을 향해간다 생각했지만 실상 도착한 곳은 내가 외워댄 역이 아닐 때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암이라는 역에 급정거하게 되어 이제는 동행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내 인생 열차는 급정거에 따른 정비 후 다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급정거. 세상과 삶을 더 깊고 아름답게 가꿀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언제든 눈물 흘릴 준비가 되었다냥! 츄르를 대령하게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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