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그리고 무지개

보름달이었는데 또 보름달이네.

by Psyber Koo


초승달은 앞으로 차오를 기세를 가졌고, 그렇게 부풀어 오른 보름달은 이제 줄어들 운명 앞에 처해있다. 달의 변화에도 주저리주저리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삶이란… 애정일까, 애증일까?

지난 보름달을 보며 저 문장을 저장했으니 꼬박 한 달은 글을 쓰지 못했다. 휘영청 둥근달이 얼음장처럼 말갛다. 내 한 달도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내려 했지만 퇴근 후 기절하기 일쑤였고 다음날 오후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식은땀에 등줄기가 젖어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야속한 시간은 흘러만 가고 이로 저로 한 마음의 줄기를 다듬어 줄 여력은 없었다.


식사 후 정리를 위해 분주해진 시각. 배경음악처럼 틀어둔 티브이에서 오래전부터 밝은 웃음을 주어 낯익은 중년의 연예인이 반삭머리로 나와 용기내어 생존신고를 하러 왔다는 프로그램 예고편이 짧게 나왔다. 식탁을 닦느라 분주한 손이 멈추었다. 그래. 생존신고. 나도 생존신고 해야 해!

그녀의 용기가 내게 닿아 글을 쓰게 하듯이 내 글도 누군가에 닿아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버튼을 활성화 한다.


그런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내 삶에도 쨍! 하고 해뜰날 이란 게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하늘이 시린 가을이 되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연말을 앞두고 한 해를 정리하며 곱씹어보면 맑은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맑음이 쨍한 맑음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러다 암치료를 하게 되면서 쨍한 아픔이 있음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뒤이어 은은한 무지개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다시 반복되는 쨍한 아픔에도 반드시 무지개가 뒤에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입동이다.

계절의 한가운데 있는 창 밖의 산은 알록달록 저마다의 가을색으로 따뜻하게 곱다.

자라던 발톱이 찢어져 빠져나갈 판이다. 항암때 힌쪽이 죽어서 까맣게 나오더니 시간이 흘러 새로난 부분이 2/3를 차지하자 까맣던 발톱은 찢어져 아주 약하게 붙어 있다.

60일간의 도슨트데뷔전은 어쨋든 무사히 끝났고, 함께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일상을 글로 담지 못해 내내 아쉽지만 어쩌랴 이것도 내 한계인 것을…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보따리를 한 아름 지고 물길을 건너려는 내게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얘기해 본다.

그냥 담담히 그 시간들을 보내도 된다고 그냥 그런대로 그렇게 지내도 된다고 위로해 본다.

이제 더는 예전처럼 꼭 뭔가를 해내려 나를 채근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다음 무지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60일 행사 마지막 도슨트를 사진으로 몰래 남겨준 고마운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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