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그리고 일 년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나요?

by Psyber Koo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던 감기를 암치료하면서는 달고 산다. 열이 잘 내리지 않고 급성인후염으로 증상이 급하게 나빠지기 일쑤다. 이번에도 폐렴으로 변질되기 전 조치가 필요해 가까운 병원에 들렀다. 고혈압 당뇨 등을 문진으로 체크하면서 그 외 먹는 약은 없냐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레 “네 없어요”라고 답하고 돌아서다 이내 화들짝 놀라 “타목시펜이요!”라 외쳤다. 이럴 땐 꼭 볼륨조절이 안되더라…


암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 그러니까 1년 전. 여기저기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들렀던 곳 중 하나인 치과에서는 내가 호소하는 잇몸이 붓고 피나는 것에 대해 ‘노화’로 일축했더랬다. 사십 대 후반에게는 동의를 얻기 딱 좋은 이유이긴 하다. 그 후 한 달도 채 안되어서 스트레칭을 하다 멍울이 만져져 유방외과에서 초음파검사를 했고 암진단을 받았더랬다. 암병원으로 전원 하면서 들고 나온 서류들 너머로 겨울이 보였으니 그래 딱 1년이 되었다. 2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진행한 꼬박 일 년 동안 치과검진을 가지 못했다. 십여 년 다녔던 치과였는데 다시 가려니 영 내키지 않은 것은 노화운운했던 선생님이 야속해서라기보다 이사 한지 삼 년이 되도록 예전 동네병원으로 다니는 내가 미련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피로나 노화로 치부하기엔 개운치 않은 증상들이 소소하게 널려있었다. 성인이 되고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던 빈혈수치, 잦은 잇몸출혈로 내내 부어있었던 잇몸, 열심히 사는 증거라 착각했던 과도한 피로감 등등이다. 건강검진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암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내게 보내는 사인들을 무시하지 않고 수시로 점검해 추이를 살피고 민감하게 몸 곳곳을 들여다보며 확인한 이유인 듯싶다.


일 년이 지났다. 흘렀다. 아니 견뎠다.

민머리였던 시절은 이제 가고 빽빽하게 들어찬 머리카락은 스타일링이 가능해졌다. 약물부작용으로 곱슬에 (어쩌면) 다모증이 시사되는 양상이지만 없어본 시기의 불편감을 알기에 이것도 감사하다. 소복소복 쌓인 날들은 드디어 활동이나 이동에 제약을 덜어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간 덮어둘 수밖에 없었던 치석제거를 위해 일 년 만에 치과를 찾았다. 집 근처로.

데스크에서는 어김없이 현재 복용약물을 확인했고, 어색하게 비껴 서서 “타목시펜이요.”라고 조그맣게 답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혈압, 당뇨 등등 일반약과 똑 같이 약복용하는 건데 왜 이리 쪼그라드는지 모르겠다.


암치료 약물 때문인지 건조함때문인지 피부반응도 예사롭지 않고 건조함은 눈에도 영향을 미쳐 자다가도 깰 정도로 안구건조에 시야불편감까지 생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책도 휴대폰도 멀리하는 실정이다. 디지털 디톡스를 이렇게 자연스레 하게 될 줄이야.

피부과, 안과 모두 처음 방문하는 곳들이라 복용약을 답해야 했고 비딱하고 주눅 든 내 말이 어디에서 오류를 냈는지 진료실에서 수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먹고 있는 항암제가 주된 이유는 아닐 수 있지만 대체로 방사선치료까지 하게 되면 나타나는 불편감에 의한 증상들이라 설명하고 부디 염증관리능력이 낮아진 것을 잊지 말라며 첫진료를 마친 의사선생님께서 주신 당부가 목구멍을 간질거리게 했다.

항암을 하며 이렇게 내 몸은 사뭇 신생아스럽게 연약한 수준으로 달라졌는데 캄캄했던 최근 1여 년의 암터널 경험을 잊었는지 그 이전의 나처럼 활동하려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염증에 대처할 능력이 저조해져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침에 목소리가 바뀌고서야 아차차하는 내가 한심하고 안쓰럽다가도 어이가 없다. ‘어리석은 인간’이라 하는 이유에 내가 또 부합했나 보다.


시간이 허락하니 또 이것저것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일정표를 채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예전에 비하면 1/3도 안 되는 스케줄이지만 암치료 중인 내 몸은 버거워서인지 금세 지치고 아프다. 그래서 자주 앓고 있다. 그렇게 앓다가 또 일어나면 일정을 만든다.

하아 이렇게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가만히 못 있는 나를 어쩌겠나… 그냥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다독이는 수밖에…라는 명분으로 몇 년 전부터 노리던(?)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일하던 시절 검사실시하며 소통이 어려웠던 농인내담자를 대하고 난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간단히라도 배워두자 싶었던 수어는 유튜브로 시도했다가 이내 접었더랬다. 어렵고 복잡해 오프라인 수업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시간이 자유로우니 지금이다 싶다. 장애에 대한 이해나 대처와 같은 거창한 시선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남겨둔 숙제를 해야겠다 싶어 시작했다. 수어는 손 이외에 표정도 중요해 얼굴근육 쓰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겨울을 앞두고 기공을 닫아 잎을 말려버리고 있는 나무 앞에 서 있으니 낙엽이 하나 둘 발아래로 흩날린다. 이미 떨어져 잘 마른 낙엽을 골라 조용히 밟아본다.

나무와 하나 되어 바람에 흩날리며 소리 없는 말로 인사를 건네었던 잎이 제 몸인 나무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와사삭.

오늘 배운 수어를 말하는 입격인, 잎을 버린 나무 앞에서 해본다. 내 소개를 마친 뒤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온몸으로 나무에게 말한다.


수어를 배우는 데는 외국어 습득의 태도로 임하고 있다. 유방암 수술로 arm save 신세가 되었는데 림프부종을 예방하기 위해 늘 조심하고 신경 쓰고 있다.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지만 여전히 팔은 (말로 나열하기 어려운 소소한 것들로) 불편한데 수어를 하면서 손의 근육을 써서 그런지 어떤 면에서는 스트레칭이 되는 것도 같다. 내 팔의 장애를 수어가 회복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외국어 습득의 태도로 임하는데 스트레칭의 효과를 보고 있는 거다. 말인데 몸이 풀리는 이 아이러니함은 초급과정을 마치며 다음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암치료를 시작한 지 일 년.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으며 죽음이 더 크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살아감’에 대해 ‘사랑함’에 대해 고려해 보고 소중함의 이면엔 더없이 무의미할 수 있음에 소스라쳤던 날들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몸의 환경이 바뀌니 마음의 그릇도 조금씩 달라졌다. 끈기를 미덕으로 삼고 참아내던 과거의 습성을 버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비해 조금은 가벼운 사람이 된 것도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뭐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그저 나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배우며 주어진 지금이라는 감사한 시간들을 이어갈 뿐이다.

낙엽비를 뿌리는 나무에게 건냈던 수어를 다시 해본다. 어설프고 느린 내 수어를 알아들었을까?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하려 준비하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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