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는 대문자 T도 춤추게 합니다.
이제는 혈액형처럼 통용되고 있는 mbti 검사 자격을 습득했던 것은 업무 때문이었어요. 임상현장에서 상담현장으로 넘어갔더니 내담자들이 원했기 때문이죠. 모든 검사는 원리를 배우기 전인 무지의 상태의 나를 첫 번째 피검자로 삼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무료검사를 몇십 년 전에 해본 것 같으니 겸사겸사 잘되었다 싶었죠. 검사결과를 들고 자격수업을 들으며 그간 오해했던 부분을 풀 수 있어서 꾀나 신선했고, 덕분에 업무에도 잘 녹여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머릿속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과정 그리고 실제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패턴을 왼손과 오른손의 우세손을 가리듯 우세한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죠. 스트레스를 잘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상황이라면 이런 내 양상을 알아둬 봤자다 싶을 수 있어요. 건강할 때는 힘이 남아도니 상대적으로 약세인 성향을 택해도 하등 문제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넘어지는 와중에 약세를 사용할 여유를 부릴 수 없죠. 우세한 손이 먼저 땅을 짚습니다. 그래야 덜 다치니까요. 그래서 알아두면 유용합니다. 내 성향을 상대에게 강조하며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규정하여 틀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태풍급이라면 주저 말고 우세한 양상으로 어서 이 토네이도 같은 위기를 빠져나와야 하니까요. 또는 내가 극단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위기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요.
어떤 방식으로든 수집된 정보를 처리하고 결정 내릴 때 편안하게 사용하는 방식은 객관적 인과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높으므로 ‘사고형thinking’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감정형feeling’이 고갈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감정은 정보처리방식의 선상에서 고려하면 개인적 가치를 기준으로 관계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고 결정 내린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감정형을 공감으로 오역해서는 안됩니다. 어찌 되었던 여기에서 검사에 대해 논하거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검사지의 한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각설하겠습니다.
암환자의 일상 재기를 기록하고자 했던 이번 연재 ‘그리고, 지금’은 제대로 쿵쾅하고 넘어진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로 써내려 가다 보면 모호한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고 평온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멋도 호소력도 없었을 글이지만 거기에 하트나 댓글로 남겨진 응원들은 글쓰기의 결과를 떠나 이겨내고 있는 지금 이 과정 자체에 가치감을 더해주었어요.
이동용 베드에 누워 눈을 휘둥그리며 수술실로 실려가던 그날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오늘은 운전대를 잡고 요청받은 곳으로 자문을 갔습니다. 지금의 이 자율성이 더없이 위대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죠.
‘그리고, 지금’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제 적극적 치료는 끝났으니 그저 재기에만 몰입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예기치 않게 수술을 또 하게 되었죠. 세상일 호락호락하지 않고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음을 이 와중에 또 깨달았습니다.
현실에 타협하느라 마음속에 넣어두기만 했던 도슨트에 도전하고 무사히 치러 결과를 인정받아 시에서 표창까지 받고 보니 넘어진 게 넘어진 것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과대포장(?)으로 지금의 나를 위로해 봅니다.
예전의 나답지 않게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아요. 2번째 수술 후 힘들면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 둔 날들이 못내 아쉽고 죄송합니다. 연재의 이름을 달고 성실히 기한을 맞추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소위 말하는 쌉T에게 보내주신 하트는 ’글 쓸 힘이 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남겨주시는 하트에 미칠 수 있는 것은 ‘살아있음’으로 간주해 버린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핑계로 여겨지겠지만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관심과 위로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달리해 고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암회복을 꿈꾸는 환자의 재기 일상을 종결하려 합니다.
아직 재기를 마친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한 해 동안 어여쁨을 실천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도 조금만 힘들고 좋은 일이 더 많은 해 되세요.
새해 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제자리이지만 저는 이전의 제가 아니므로 또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암치료 후 사회 복귀자로서의 일상이 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