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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Nov 30. 2021

책 <블루버드, 블루버드>, 소설은 그저 그랬지만

'번역 소설, 잘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네버모어
2020년 07월






텍사스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로스쿨에 진학하는 등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물이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레인저의 길로 들어선다. 태생적 집단-흑인-에 대한 보수적 사회-텍사스-의 차별적 시선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가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두 개의 사건 한가운데 서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블루버드, 블루버드>.


소개말과 추천평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신중한 생각과 새로운 방면의 시각을 환기해 볼 수 있는 책으로 기대했지만 소설은 단순 범죄 스릴러물에 가까웠고,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이 책에도 해당은 되지만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를 덧붙여 보자면…… '무슨 상 어쩌고' '돌풍 어쩌고' '아무개가 추천'하는 타이틀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한지 오래고, 지나치게 헤프다는 생각까지 든다. 띠지를 점령한 그런 유의 타이틀은 이제 성가시기까지 하다.


범작은 물론이고 비범한 작품까지 적지 않은 시대에 독자의 눈에 들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너무 많은 책들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한 결과, 도리어 책을 고르는데에 수상의 권위가 작용하지 못하게 됐다. 남발에 대한 피로감도 그렇지만, 그렇게 내세웠던 권위와 작품성이 많은 경우에 함께 보장되지 못한다는 걸, 독자들은 다량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주로 타 언어권의 작품에 대해 이런 실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번역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번역의 완성도나 질에 대한 의심과는 다른 의미다.


당연한 얘기지만 서로 다른 두 언어는 결코 완벽히 같을 수 없으므로, 번역이라는 어쩔 수 없는 절차를 거치며 원작을 원작 그대로 읽지 못하고, 원작을 기반으로 다시 창작된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문학은 특히 단어 선택이나 문장 구조, 뉘앙스 등이 전체 서사의 흐름과 인상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당연히 저 언어와 이 언어 사이에 아주 꼭 맞아떨어지는 상관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원작에서 쓰인 표현이 그 언어권만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를 바탕으로 오래 묵어 온 것이라면 더더욱.


여기에 번역가의 언어 습관까지 더해지면 정말이지, 과연 '그 작품'이 '그 작품'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버린다. 작가들이 사소한 부사와 조사 하나에도 며칠을 고민하는 것이 괜한 일이 아닐 텐데, 과연 그 치열한 고민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는 번역이란 게 가능한 일인 걸까?


물론 번역 작품은 번역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단어와 문장을 다듬은 결과물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이 의문은 번역가의 일을 불완전한 작업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다. 단지, 언어와 언어를 교환하는 작업의 근원적인 간극에 대한 의문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가볍게 번역가 정영목의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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