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깊은 집>
김원일
문학과지성사
2018년 09월
전후의 대구, 마당 깊은 집 아래채에 세 들어 살던 다섯 가구. 매 문장에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위해 감내했던 비애들이 속속들이 스며 있다. 사사롭지만 결코 사사롭지 않은 개개의 인생들이 고난을 어떻게 살아내고, 이름 석 자 남길 대단찮은 일도 없이 시대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체념, 비애로 얼룩졌던 삶들. 그 비애의 총합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을지 생각한다.
흔히 '때를 잘못 타고났다'라고들 한다. '그런 시대' '그런 세상'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떠밀렸다고들 한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지금껏 인간이 지나온 모든 시간대가 그랬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이가 평온했던 시절은 없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고통 중에 있었고 괴로움을 겪었다. 현재도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 장에 이르자 <무정에세이>(부희령)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사람의 훼손된 삶의 의미를 헤아려 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기 뜻과 상관없이, 이유도 모르는 채, 누구도 짐작 못할 고통을 오롯이 견딘 사람들이 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덧없이 죽었고 어떤 이들은 끝내 살아남았다.」(253쪽)
어려운 형편에 간신히 구한 신문 배달 일을 하던 화자 '길남'. 그는 어렵게 구했던 구독자인 '희망 고아원' 원장 일가가 비리를 저지르고 야반도주한 사건을 마주한다. 지원금을 횡령해 사사로이 축적한 탓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은 아이들을 매장하고 도주한, 그 끔찍한 사건 앞에서 길남은 구독처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에 상심한다.
밥 한 끼 변변찮게 먹지 못하는 그의 집에 올 때면 늘 맛있는 만두를 사 오곤 했던 '문자 이모'의 자살 앞에선, 따뜻하고 달콤한 만두를 다신 얻어먹지 못하겠구나 아쉬워한다.
먹고사는 고통이란 그런 것이었다. 처참하고 슬픈 죽음 앞에서도 신문 구독처를 잃었다는 상심이, 다신 만두를 구경도 못하겠다는 아쉬움이 먼저 들어버리는. 그 심사를 감히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지적하고 싶지 않다. 도리어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으로 길남의 인간성이 시험에 들게 한 시대를 원망하면 모를까.
“우짜든동 너그들 안 굶기며 묵고 살라고 이래 죽자 살자 일을 하는데…… 내일부터 우리도 점심밥 묵도록 하자. 해가 긴 지난여름동안 한창 크는 너그 성제간들 점심 굶길 때, 길중이 무르팍에 피멍만 보아도, 내사 하루에 몇 분씩이나 내 가슴에 재봉실을 박으미, 목울대로 한 됫박 넘이 눈물을 되넘기미, 그 긴긴 해를 넘겼다. 객지에서 설움 많은 우리 식구여, 더러운 세월이여……”
(77쪽)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신문 배달 나선 길에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눈물과 분노가 벽마다 배어 있는 그 아래채 네 칸과 바깥채 가겟방과, 기우뚱 쓰러질 듯한 솟을대문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듯 아픔이 마음을 쳤다. 그날 나는 내내 우울했다.
(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