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의 깊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Dec 20. 2021

책 <다른 방에는 다른 놀라움이>, '쉬운' 소재의

반복적 소비만 남은 책.



<다른 방에는 다른 놀라움이>
더니얄 뮈냐딘
민음사
2021년 05월






배경은 파키스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내야 하는 하층 계급의 비애와 처절, 그를 둘러싼 사회 구조의 비정함을 그리고자 한 소설.


이 책이 미국에서 첫 출간 되었다는 2009년에야 먹힐 문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2021년에 이 소설이 새로 번역 출간되었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굳이? 어째서?


직설적으로 말해서, 권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에게 가난해서 살 길 아득한 젊은 여자가 '다리 벌려주는' 플롯이 단편마다 반복되는 소설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이게 '지금' '여기'의 독자인 나는 제3세계의 이야기니까 그나마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배경으로 요소요소를 치환해 오면 그놈의 '젖가슴' 타령하는 남성중심의 여성대상화 문학의 반복과 어디 다를 바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김훈으로 대표되는 중견 작가들이 허구한 날 '젖가슴' 어쩌고, '생리' 어쩌고 하는 패턴을 빼다박았다.


그런 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여성 인물의 심리를 철저히 남성적 관점에서만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런 시점이 단편마다 돌려막기식으로 반복된다. 물론 그곳의, 그때의 세태가 현실적으로 그랬을 수 있다. 그것이 실재하는 하층 계급의 현실이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현실에 과연, 이런 식으로밖에 소비할 수 없는 '몸 팔고 바치는 여성의 서사'만 있었을까? 이런 서사만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런 방식으로 굴러가는 사회 구조와 권력을 비판하려고 했던 건가 싶지만 그렇게 영리하게는 읽히지 않는다. 당사자성이 배제된 자극적 소재의 반복적 소비만 남았을 뿐.


물론 작가의 쓰기라는 건, 결국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아무리 폭넓은 사고와 상상을 한들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을 거다. 작가 스스로의 인지 하에, 혹은 은연 중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모티프가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다른 형식과 틀을 입히는 노력을 하더라도 깊이 파고들다보면 결국 동어반복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반성도, 변주도 없는 이야기라면 그런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과 기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래,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상층 계급과 엘리트의 삶만 살아온 작가가 이토록 피상적으로 하층 계급을 다룬 소설이라면 이건 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단편집의 첫 작품이었던 <전기 기사 나와브딘>이 썩 나쁘지 않아서 읽을만한 책을 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훼이크였음을.







세상엔 '문학'과 '문학상 수상'과 '문학상 후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 잡설이 너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작별하지 않는다>, 참혹이 새겨진 삶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