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 권도 낸 적 없는 출판사와 미팅했습니다

작가의 마음과 걸음

by 송혜교



내 상상 속 '출판사와의 미팅'은 여유롭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어릴 적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멋진 재킷에 안경... 일명 지식인의 룩을 선보이리라.


하지만 내 스케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못했다.

세미나와 강의가 잔뜩 잡혀서, 딱딱하고 재미없는 정장이 당시 나의 기본값이었다.

결국 그날도 세미나가 열리는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미팅을 진행했다.

감사하게도 시간과 장소까지 모두 나에게 맞춰주신 것이다.

나는 정장에 구두 차림으로 서류를 잔뜩 들고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사실 미팅에 나가기 전, 나는 많이 긴장해 있었다.

뭣도 모르던 시절 책을 내보고 싶다며 혼자 끄적거린 출간제안서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출판의 ㅊ도 모르던 나는, 선배 작가들이 가득한 브런치에 들락거리며 '출판사 미팅', '출간 과정', '출판사 계약'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검색해 댔다.


업무 미팅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많이 해 본 사람인데도,

작가지망생으로서 베테랑 출판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작가도 알 건 알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조언을 보자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추진력이 좋은 타입이지, 그리 섬세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사 고르기의 중요성에 대한 글이 사방에 가득했다.

최대한 여러 곳에 출간 제안을 돌려봐야 한다는 글이나,

대형출판사와 소형출판사를 잘 비교해 보고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글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만큼이나 중요한 게 출판사의 역량이니, 기존에 출간된 도서를 잘 살펴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만나기로 한 출판사는 아직 출간 도서가 없는데!

무엇을 보고 결정해야 할지 한층 막막해졌다.

첫 미팅만 잡은 주제에 벌써부터 계약을 생각하는 자신이 웃기기도 했지만,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출판사에서는 대표님과 편집장님이 미팅에 참석했다.

두 분 다 여성이라는 것을 마주하자 급격하게 마음이 놓였다.

인사를 나눈 뒤, 대표님은 출판사 소개가 담긴 서류를 건네주셨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교밖청소년, 싱글맘,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아직 출간 도서가 없기 때문에, 타 출판사의 좋은 책들을 보여주시면서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출간을 제안하시게 된 뒷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밤샘 마감을 할 일이 있어 TV를 틀어둔 채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출연한 다큐멘터리가 재방영되고 있었다.

학교밖청소년으로서 지원단체를 운영하는 나의 일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글쓰기는 제쳐두고 나에 대해 검색해보셨다고 한다.

혹시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메일을 보낼까 봐 급하게 문의글을 작성했는데, 그게 새벽 6시였다.


보통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의할 때는 짧아도 몇 주, 길면 몇 달의 조율 과정이 있다고 한다.

메일을 받은 당사자가 책을 쓸 마음이 있는지, 다른 출판사와 이미 논의된 사항은 없는지, 우리 출판사를 마음에 들어 할지 아무런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새벽 6시에 메일을 보냈더라도, 언제쯤 회신이 올진 미지수다.

게다가 책 한 권도 나오지 않은 신생 출판사니까, 더더욱 기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메일을 받은 당일에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하하, 이렇게 쉬운 작가일 수가 없다.




어쨌거나 우리의 첫 미팅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새벽 6시에 메일 보내는 출판사 대표

당일에 바로 전화 걸어버리는 작가의 만남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인 만큼 구체적인 것은 정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정도로 그쳤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계약 여부를 고민할 일만 남은 셈이었다.



소소한 일상과 각종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