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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Feb 14. 2023

게으름에도 종류가 있다

아주 최소한의 갓생을 향하여



 게으른 사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부지런한 자들은 우리를 ‘게으른 놈들’이라고 통일해 부르겠지만, 사실 게으르니스트는 그 성향과 방향이 제각각이다. 모태 게으르니스트인 나의 분석에 따르면, 게으름에도 원인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첫째는, 본인의 능력에 알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진 경우다. 일명 ‘미루기의 달인’. 지금 당장 성실히 움직이지 않아도 그럴싸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마음껏 게으름을 피운다. 넷플릭스도 보고 취미 생활을 즐길 때도 있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으면 그제야 허둥지둥 일을 시작하지만, 신기하게도 늘 결과물이 나쁘진 않다. 이 사실을 동력 삼아 또다시 게으름을 피운다. 물론 최상의 결과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저하고 성실한 삶에 대한 약간의 동경은 가지고 있으나 그걸 자신의 인생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금 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게으름을 즐긴다.


 이 부류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떻게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정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귀찮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최소한의 품을 들여 그럴싸하게 해 온다.


 A4용지 100장을 세어 가지고 오라고 시켰더니 한글을 켜 아무것도 타이핑하지 않고 100장 인쇄를 눌렀다는 ‘잔머리의 전설’ 속 주인공도 평소 게으름이 많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번아웃? 전 그냥 아웃이에요

 

 둘째로,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망한다는 걸 알지만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다.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첫 번째 사례와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다르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은 대체로 게으름을 떠는 과정에서 불안함이나 초조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중에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 부류의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는 과정까지 즐기지는 못한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서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게으르니스트를 보며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안 하면서 괴로운 것보다는, 얼른 해치우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마치 이해 못 하는 대학생을 이해 못 하는 젊은 교수와 같다.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짐을 싸야 내일 허둥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지금부터 꾸준히 작업하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고생할 것을 알지만... 아,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당장 벌떡 일어날 자신이 없다.


 이 유형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서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할 일이 있는데 하지 않는 마음’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마음’만큼이나 무겁다. 여기에서 억지로라도 열심히 움직인다면 번아웃이 오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아웃이다. 자칫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아웃당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지치네


 마지막으로, 타고나길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 하루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쓸데없는 푸념을 하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제 집에 가서 옷 걸어놓고... 가방 정리하고 빨래 넣고 씻고 자기 전에 협력사에 메일 한 통 예약 걸어놔야겠어. 생각만 해도 지치네.”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일상적인 일을 하나하나 다 생각하면서 한단 말이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이다. 옷을 걸고 바구니에 빨래를 넣고 씻는 것과 같이 매일 반복하는 일은 아무 생각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부류. 그리고 나처럼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한번 치른 뒤에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부류. 일명 ‘시뮬레이션파’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까지, 나는 사람이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집에 들어가면 왼쪽에 신발을 넣고 오른쪽에 가방을 잠시 올려둔다. 욕실에 가서 손을 씻고 가방을 챙겨 방으로 간다. 가방에서 지갑과 이어폰을 꺼내 책상 위에 둔다. 옷방으로 이동해 빈 가방을 올려두고 옷을 건다. 빨아야 할 옷은 세탁기 앞 빨래바구니에 담는다. 잠옷을 챙겨서 욕실로 간다...


 나는 매일 이 모든 것을 생각한다. 계획하지 않으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은 물론, 동선이 꼬여서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최적의 동선을 찾을 수 있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세상에는 이런 비효율적인 뇌를 가진 인간도 있다. "생각만 해도 지치네"라는 문장으로 이 부류를 설명할 수 있다.





에너지효율이 낮은 인간


 아주 부지런한 친구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냥 후딱 하면 되지, 뭘 그래?” 밀린 설거지? 얼른 일어나서 해치워버리면 되지! 집에 라면이 떨어졌어? 그냥 나가서 얼른 사 오면 되지! 그 친구를 보면서 느꼈다. 게으르니스트와 부지러니스트는 ‘일의 무게를 얼마나 막중하게 생각하는지’에 그 차이가 있다는 걸.


 나에게 있어 편의점에 가서 라면 사 오기란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서 편의점까지 오간 다음, 손을 씻고 다시 옷을 갈아입는 험난한 여정이다. 부지러니스트인 내 친구는 이런 고민을 할 시간에 그냥 ‘후딱’ 다녀온다. 무수히 노력해보았으나, 모태 부지러니스트인 친구의 가벼운 외출 사이클에 적응할 수는 없었다.



 게으르니스트를 조금 더 깊이 탐구해 보자면, 에너지효율이 구린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효율이 낮은 게으르니스트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효율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식이다.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면 된다.




게으르니스트's 한 마디

"아,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당장 벌떡 일어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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