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도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결국엔 자기만의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까? 내 대답은 ‘YES’다. 자랑처럼 늘어놓기엔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게으르다고 자부한다. 어릴 적부터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게으름의 역사는 생후 18개월일 때부터 시작된다. 보통 돌 정도 되면 자기 돌 떡을 아장아장 걸으며 돌리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난 한 살 반이 되도록 기어 다니기만 할 뿐, 서 있는 시간도 거의 없는 아기였다. 부모님은 너무 걱정되어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에게서 들은 말은, “건강이나 발달상태에는 전혀 문제가 없네요. 못 걷는 게 아니라 안 걷는 겁니다.”였다.
18개월 무렵,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우다다 달렸다고 한다. 걸음마의 과정 없이 곧바로 뛰어버린 것이다. 즉, 그동안 충분히 걸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서 기어만 다녔다는 뜻이다. 태초부터 이렇게나 게을렀다.
게으른 애 중에 제일 부지런한 애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지, 나는 여전히 게으름의 끝을 달리고 있다. 12시간 넘게 잔다고 해도 전혀 허리가 아프거나 찌뿌둥하지 않은 천생 잠순이다. 귀가 후 힘을 내어 옷장 앞까지 걸어가 놓고서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져서 바닥에 셔츠를 던져버린다.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정리하는 것이 억만장자들의 공통적인 습관이라는 것을 익히 들어왔지만 내 이불은 돌돌 말린 상태가 기본값이다. 뭔가를 사면 잘 정리하겠다는 일념으로 처음 산 그대로 상자들을 정렬해놓지만, 한 달만 지나면 한 상자에 모든 것이 뒤엉켜 들어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상 옆에는 정리되지 않은 택배 상자가 세 개 정도 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형태는 집 안에서만 일어난다. 삶은 삶, 일은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내 일상을 ‘갓생’이라고 치켜세워준다. (지금도 내 이불이 돌돌 말려있는 건 모르고...)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의 나는 굉장히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단체를 운영하면서 책을 쓰고 강의를 다닌다. 그와 동시에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고 예닐곱 개의 기관에서 위원직을 맡아 일하고 있기도 하다. 칼럼 같은 짤막한 글도 꾸준히 쓴다.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한다. 고로 나 자신을 '게으른 애 중에 제일 부지런한 애' 정도로 칭하고 싶다.
게으름, 성향이 아닌 증상일지도 몰라
사회초년생 시절, 나는 나의 게으름에 자괴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갓생’ 문화가 유행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미라클 모닝? 작심삼일이면 다행, 하루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감사일기? 귀찮아서 꾸준히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앞부분만 쓰고 버린 노트만 몇 권인가.
비단 나와 같은 슈퍼 게으름을 지닌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런 자괴감을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바쁜 현대 사회인에게 게으름은 단순한 성향을 넘어 피할 수 없는 ‘증상’이다. 출근할 생각에 벌써 지치는데 명상할 여유가 어디 있으며, 퇴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영어단어를 외우는 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과로사 프리패스 티켓을 셀프로 끊는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미 일주일에 5일을 회사에 바치고 있다. 이보다 더 열심히 지내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일정 수준의 게으름은 거북목증후군이나 위염 같은 현대인의 증상인 셈이다.
저는 게으르니스트입니다
나 역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 의지박약형에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갓생 비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비법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이 글에서 우리를 ‘게으르니스트’라고 칭하겠다. (그게 좀 더 멋져 보이니까!)
게으르니스트라고 해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바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방법만 익힌다면, 나처럼 걷기 싫어 기어 다니던 수준의 모태 게으르니스트도 실천이라는 걸 해볼 수 있다. 만사가 귀찮긴 해도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 의지박약이지만 이번 생에 그 고리를 기어이 끊어내고 싶은 사람, 자신의 게으름을 잘 조절하고 싶은 사람 모두를 환영한다. 때로는 ‘아주 최소한의 갓생’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