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Oct 30. 2023

고등학교를 자퇴했어요,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자퇴 전문가의 '자퇴고민상담소'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는 각자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싶은, 또 각자의 이유로 자퇴를 말리고 싶은 분들을 위한 시리즈입니다. 학교에 가기 싫은 청소년과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 교육자를 위한 자퇴 고민 상담소를 엽니다.



안녕하세요, 17살 자퇴생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자퇴를 했어요. 이제 자퇴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주로 늦잠 자고 일어나서 조금 뒹굴거리다가, 게임도 하고 핸드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당분간은 조금 여유롭게 지내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당장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딱히 안 들고, 뚜렷하게 정해진 진로도 없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 자퇴하고 첫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돌아보니까 시간이 순삭된 느낌이에요. 점점 게을러지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까요? 그냥 이런 식으로 쉬어도 정말 괜찮을까요?




가장 자유로운 버전의 나


자퇴 후 한 달,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른들이 퇴사 후에 휴식을 위한 시간을 갖듯, 청소년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은퇴 후의 삶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자퇴 직후, 지금 이 시기가 남은 삶에서 가장 자유롭고 한가한 시기일 겁니다.


앞으로는 입시나 진로, 취업, 창업 등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 많으니까요. 성인이 되면 여가 시간이 생기더라도 아무런 책임감 없이 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푹 쉬고, 재미있게 노세요.


하지만 본격적인 휴식에 돌입하기 전에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만큼인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스무 살에 대학에 진학할 거라면 내가 가고 싶은 학과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먼저 살펴보세요. 아직 전공하고 싶은 게 없다면, 원하는 분야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넉넉히 빼두어야겠죠. 진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택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준비하기 위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푹 쉬세요.




어떻게 쉬어야 할까?


단, 푹 쉬어도 된다는 게 '아무렇게나' 쉬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기간 동안 '좋은' 휴식을 누리는 게 중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로, 언제까지 쉴 것인지 그 기한을 정해두어야 합니다. 당장 엄청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장기 계획과 데드라인을 세워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진로나 학습을 위한 생산적 활동, 즉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시기를 정해두고, 나만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올해 10월까지만 쉴 거야, 딱 한 달만 더 놀 거야 같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정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일입니다. 정해둔 휴식 기간이 끝나면, 해야 할 일을 하세요. 학교 밖의 삶은 나 자신에게 약속하고 이를 지키는 일의 연속입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순간 삶의 균형이 깨집니다. 학교를 떠났으니 이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닌 내 눈치를 볼 때입니다.




죄책감 없는 진짜 휴식


가끔 저는 인터뷰 중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성취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그럴 때면 늘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자퇴 후 원 없이 쉬고 놀았기 때문에 크게 미련이 없어요." 저는 늦잠도 늘어지게 자봤고,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살아보기도 했고,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만 보면서 시간을 보낸 날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몸과 마음을 충전한 다음, 하고 싶은 일을 찾았죠.


좋은 휴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쉬면서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정해놓은 기간 안에서 쉬거나 노는 것이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쉴 때는 확실히 쉬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고, 달려야 할 때 제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애매한 죄책감을 가진 채로 쉬게 되면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만큼은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쉬고 싶은 만큼 쉬세요.

 

다만 노는 것과 쉬는  것을 구분해서 즐겨야 합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는데 왜인지 푹 쉰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쉬지 않고 놀기만 한 건 아닌지 살펴보세요. 노는 것과 쉬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독서가 휴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운 놀이인 것처럼요. 내가 평소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생각해 보고, 그중 노는 것과 쉬는 것을 구분해 충분한 휴식 시간을 확보하세요.




질 높은 간접경험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면서 쉬는지가 중요합니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동안 자유롭게 나 자신을 망쳐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도 괜찮지만, 적어도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되니까요.


이때 무엇을 접하며 쉬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콘텐츠를 접하며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넷플릭스를 볼 수도 있고, 유튜브를 볼 수도, 틱톡이나 릴스를 볼 수도 있겠지만, 이때 소위 말하는 '도파민 중독'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꼭 어려운 다큐멘터리나 책을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1분짜리 숏츠를 1시간 동안 넘기기보다는 2시간짜리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세요. 진로와 전혀 관심 없는 판타지 소설이라도 괜찮으니 책을 많이 읽는 연습을 하세요. 자극적이고 짧은 숏폼 콘텐츠에 적응하게 되면 긴 서사가 있는 콘텐츠에 적응하기 힘들어집니다.


'쉴 때 무엇을 하는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면, 질 높은 간접경험을 쌓는 일에 집중해 보세요. 잘 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어쩌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요.




학교 밖 활동 범위 넓히기


또 한 가지 추천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입니다. 학교 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대인관계를 넓혀나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매년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주어지던 학교 안과는 다르게, 학교 밖에서는 친구를 쟁취해야 하니까요.


앞서 언급했던 꿈드림센터, 친구랑 센터 등 다양한 청소년 기관에서 또래 친구를 접하는 것도 좋습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면 친구랑 센터를,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면 전국 2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는 꿈드림센터를 추천합니다. 도서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밖청소년 지원단체 홈스쿨링생활백서에서도 자퇴생을 위한 비영리성 행사를 종종 주최하니, 참고해 주세요.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활동범위와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 등 많은 곳에서 만 24세 이하 청소년에게 입장료를 면제해 주고 있습니다. 교통비만 준비하면 되니 경험을 쌓기엔 정말 좋죠. 이렇듯 다양한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학교 밖 생활을 풍성하게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 작가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 자퇴생 에세이 <열다섯, 그래도 자퇴하겠습니다> 구경 가기

   알라딘 | 교보문고 | YES24

이전 09화 공교육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