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전문가의 '자퇴고민상담소'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는 각자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싶은, 또 각자의 이유로 자퇴를 말리고 싶은 분들을 위한 시리즈입니다. 학교에 가기 싫은 청소년과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 교육자를 위한 자퇴 고민 상담소를 엽니다.
[오늘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곧 고등학생이 될 텐데, 아예 진학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요.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이 제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져요.
현재 대인관계와 학업에는 문제가 없지만, 어릴 적부터 학교생활 중에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부조리한 교칙과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이 제게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사실 성적은 좋은 편이지만, 가끔은 이유 없이 무작정 주어진 내용을 외우기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는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하셨어요. 대신 학교를 그만둔 뒤 어떤 목표를 잡고 공부하고, 생활할지 걱정이 된다고 하십니다. 사실 저는 아직 특별한 진로를 정하지 못했거든요. 정해진 진로나 명확한 계획 없이 자퇴하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일까요? 이대로 고등학교 미진학하고 학교 밖에서 혼자 공부해도 괜찮을까요?
학교는 참 효율적인 교육기관입니다. 게다가 장점도 많죠. 모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게 해 주고,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며, 학력까지 취득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교육 전문가가 상주하며, 안정적인 소속감을 부여받을 수도 있죠.
그러나 이러한 학교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공교육이란 말 그대로 공공의 목적을 가지며 공평함을 추구하는 교육입니다. 때문에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을 개별적으로 제공할 수는 없죠. 저렴한(혹은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양질의 기본 교육을 제공받는 대신, 보편성을 피할 수는 없는 겁니다.
공교육의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시스템이 잘 맞는 학생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러한 장점이 오히려 답답하고 치명적인 단점으로 다가오는 학생도 많을 겁니다. 모든 학생에게 잘 맞는 학교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이에 불편함이나 회의감을 느끼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고민 없이 자퇴 혹은 미진학을 택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맞지 않다'라는 건 다소 추상적인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학교에 다니며 들었던 생각을 구체적인 목록으로 정리해 보세요. 어떤 부분이 불편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며, 이에 따른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요.
학교 안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때는 학교를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단, '맞지 않는 교육'을 떠날 때는 늘 '그보다 잘 맞는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떠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떠난 후에 내게 맞는 교육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죠.
학교를 떠나 독학하는 것이 내게 잘 맞을지, 아니면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주된 문제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안학교 혹은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 좋을지, 국내의 교육 방식을 벗어나 해외로 향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원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그려보는 게 실제 학교 밖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연자는 당장 학교에 가지 않는 자퇴보다는 고등학교 미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니, 이에 대해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겁니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원하고 꿈꾸는 교육에 관해 생각하고, 조사해 보세요!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정말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자퇴해도 늦지 않습니다.
뚜렷한 진로를 찾아 계획을 세운 뒤 자퇴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정해진 진로가 없다고 해서, 학교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앞서 5편 <자퇴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을래요>에서 진로 탐색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안내한 바 있는데요. 이곳에서 소개한 사이트와 지원정책들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5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학교 밖에서 진로를 탐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태도입니다. 사연자는 이미 대인관계와 학업을 비롯한 학교생활을 문제없이 해내고 있는 상황이니, 이를 학교 밖에서도 꾸준히 이어나가면 됩니다. 다만 어떠한 강제성이나 규율도 없이 본인이 원하는 방향과 일상을 그려나가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달라지겠지요.
당장 정해진 진로가 없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한창 탐색할 시기니까요. 학업이나 진로의 끈을 놓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하기만 한다면 꿈을 찾을 시간은 충분합니다. 이제 17살이 되니 진로를 결정할 시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20살에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할 뿐이지, 꼭 정해진 나이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고등학생이 졸업 후 1년 동안 흥미와 적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학업을 중단하는 기간이 있고, 독일에도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는 교육 제도가 존재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모두가 같은 학년, 같은 나이인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대학과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조급해하기보다는, 원하는 방향을 그리는 데 집중해 보세요.
선택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학교를 떠난다고 해서 주입식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학력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주어진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합니다.
대안학교를 택하든, 검정고시를 준비하든 그 과정에서 암기는 필수입니다. 기본적인 교과 과목은 모두 비슷하게 이뤄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만약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할 거라면, 사연자가 싫어하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도 어느 정도는 지속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함께 배우느냐, 학교 밖에서 홀로 배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다만 학교 밖에서는 시간 조율이 자유로우니 이러한 주입식 교육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원하는 다른 일에 몰두할 시간을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학력 취득을 위한 공부 시간을 정해둔 뒤 일정 시간 동안 교과목을 독학하고, 그 외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아르바이트, 대외활동을 하는 등 진로 탐색에 주력했습니다.
7개 국어를 구사하기로 유명한 조승연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 시험에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밥을 한다'라는 문제가 출제된 것을 보고 가부장적인 개념을 주입시키는 교육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한국 교육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겨 해외로 떠났고,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받으며 행복하게 성장했다고 하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부조리하고, 불편하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가끔은 반가움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예민하고 까탈스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익숙함 속에서 불편함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자퇴하겠다는 청소년이 있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 말릴 겁니다. 학교 밖의 생활은 학교 안에 비해 훨씬 척박하고, 버거우니까요. 하지만 사연자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후에도 '공교육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나와 맞지 않으니 떠나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거라면, 이는 단순히 학교에 다니기 싫은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명확하게 갖고 올곧게 살아간다면, 그간 느껴왔던 불편함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될 겁니다. 학교 안과 밖, 어느 곳을 택하든 그 재능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