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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제일 재미있던 아이, 커서 무엇이 됐냐고요?

지혜로운 청춘이란 이런 것, 02년생의 유랑기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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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02년생 제니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부터 해외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어요. 한국 아이들에게 영어를,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까지 2주가 걸렸는데요. 바빴던 탓도 있지만, 저에게 이 질문이 너무 어려웠던 탓이 커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저를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다'라는 그 문장 자체가 저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청소년기에는 관심사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요즘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재밌어요! 좋아하는 게 많다는 건 즐거운 일이잖아요.






Q. 10대에 홈스쿨링을 하셨다고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나요?


네, 고등학교에 미진학했어요. 당시 역사에 미쳐있었어요.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어요. 수요일 저녁마다 박물관에서 열리는 ‘큐레이터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특히 좋아했어요.


특히 궁중문화축전이 열렸을 때, 기간 내내 찾아가서 안내 데스크 직원들이 저를 기억할 정도였어요. 박물관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면, 보통 어르신들이 많이 계세요. 미성년자는 저뿐이었죠. '어린 학생이 어떻게 이런 곳에 다 왔냐'라는 말을 들으면 내심 뿌듯했어요.


KakaoTalk_20250718_023502763.jpg 열일곱, 궁중문화축전에 빠져있던 시절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걸 체험하며 익히려고 노력했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잖아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죠. 저는 항상 학교에 가느라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슬펐거든요.


과학을 공부해야 하면 바로 과학관에 갔고, 미술을 공부하다가 그 작품이 우리나라에 전시되어 있으면 가서 직접 가서 관람하기도 했어요. 친구들에게 투어를 시켜주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덕수궁에 가기로 하면, 제가 먼저 그와 관련된 책이나 방송, 유튜브를 봐요. 그리고 마치 투어 가이드가 된 것처럼 소개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공부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던지, 몇 년이 지나도 그 내용들이 안 잊혀요. 아직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꼭 궁을 비롯한 역사 속 장소에 데려가서 설명을 들려줘요. 어제도 호주에 사는 친구들이 놀러 와서 덕수궁에 데려갔어요. 아마 제 친구들은 모두 저랑 궁 한 번쯤은 가봤을걸요?






Q. 주도적으로 뭔가를 배워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 같아요. 배움에 뜻을 두게 된 배경이 있나요?


타고나길 궁금증이 많아요. 길을 걷다가도 "왜 하늘은 파란색이지?" 하는 생각이 들고, 버스를 타다가도 "왜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지?" 같은 질문이 떠올라요. 심지어 "저기 걸어오는 저 사람, 무슨 키링을 달고 있는 거지?"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요. 쉴 새 없이 새로운 질문이 머릿속을 채워요.


배움은 궁금증을 해소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잖아요.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니, 다양한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무언가를 배울 때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 여겨요. 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들려주는 것도 좋아하는 성향이거든요. 그래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 역사나 과학 분야를 특히 좋아해요.


'남들은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게 싫어요. 천 년을 산대도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가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커요. 그런 태도가 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믿고요.






Q. 해외살이도 오래 하셨어요. 처음 한국을 떠나게 된 계기는요?


처음부터 외국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단순히 친구들을 만나러 간 거였죠. 호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어요. 호주는 미성년자, 특히 어린이들이 SNS 계정을 만드는 것에 엄격한 편이라서요.


그러다가 열여덟쯤 되었을 때 우연히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했어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하더라고요. 문득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 호주는 딱 마지막 페이지를 못 읽은 책 같았거든요. 호주에서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고, 다시 돌아가 보기로 했어요. 마침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여유로웠어요.


KakaoTalk_20250718_135203524.jpg 졸업식에 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렇게 3개월 관광비자를 받아 호주에 갔어요. 그런데 그때 정확히 코로나가 확산됐어요. 점점 국경이 닫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걱정됐죠. 아직 충분히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디플로마 코스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으로 따지면 전문학사와 비슷한데, 1년만 공부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비교적 학비도 저렴했고요. 게다가 코로나 탓에 호주에 돌아오지 않은 국제 학생이 많아서 기숙사비도 엄청 저렴해졌어요. 타이밍이 정말 좋았던 거죠.


그렇게 디플로마를 받고 다시 고민에 빠졌어요.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까? 아니면 2년 더 공부해서 학사 학위를 받을까? 원래 외교관이 되는 게 오랜 목표였거든요. 지금도 그 꿈을 버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서 외교관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그때도 역시 타이밍이 좋았어요. 원래는 졸업하면 더 이상 학생 비자로 호주에 머물 수 없으니 바로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조건이 완화되면서 호주에서 2년 더 머물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니 제 10대의 끝과 20대의 시작을 코로나가 전부 정해주었네요.






Q. 코로나는 많은 이에게 불안함을 주었는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으셨군요?


아르바이트 자리가 귀해지고, 비행값이 오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긴 했죠. 하지만 코로나 탓에 특별히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런 특수한 상황 덕분에 호주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인생 첫 자취를 호주에서 시작했던 터라, 살림을 하나씩 꾸려 나가는 일에 재미를 느꼈어요. '어른이 된 나, 정말 멋지다!' 이런 생각을 주로 했달까요.


KakaoTalk_20250718_134553601.jpg 호주에서, 학부 친구들과


그리고 호주에 머물며 학교 공부보다 더 재밌는 걸 찾았어요. 뷔페에서 시간제로 근무했었는데, 컴플레인이 엄청 많았어요. 때로는 음식이나 서비스와 전혀 관련 없는 인종차별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욕하는 손님을 만나기도 했죠.


그 과정이 힘들면서도 재밌었어요. 저 멀리서부터 화난 표정으로 오는 손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사과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제공해 주고…. 결국에는 화가 풀린 손님과 "다음에 또 봐!" 하며 인사를 나누는 모든 과정이요. 나중에는 동료들에게 컴플레인이 생기면 저를 먼저 찾아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게임을 즐겨하는 편은 아닌데, 유일하게 하는 게임이 타이쿤이거든요. 이 모든 게 차근차근 미션을 해결하는 게임 같았어요. '오늘도 이렇게 한 퀘스트를 마무리했어, 내일은 더 성장한 내가 있어!' 생각했죠.


사실 제 주변의 어른들은 제가 호주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간이 시간 낭비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덕분에 영어 실력도 훌쩍 늘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업무에서 저 자신을 분리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 일하며 배웠던 것들이 삶의 자산이 된 셈이죠.






Q. 그리고 지금은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계시죠. 계기가 궁금한데요.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중학생 때 친구들과 서로 시험 준비를 도와준 적 있었는데, 그때 친구가 "너는 절대 다른 사람 가르치지 마."라고 말하더라고요. 핵심만 쏙쏙 모아 전해주는 걸 정말 못 했어요. 아, 나는 강사라는 직업과는 정말 먼 사람이구나 느꼈죠.


그런데 작년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말레이시아에 반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한국어를 굉장히 많이 접했어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중 잘못된 게 많아요. 대충 한글을 적어 넣고 한국산인 척하는 제품이라든지, 한식도 아닌데 한식인 척 파는 식당도 있고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국'이란 말이 붙으면 모든 게 비싸져요. 많은 사람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그런 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소셜 계정을 만들어 한국 반찬 조리법과 한국 화장품 같은 것을 소개하게 됐어요. 현지 친구들을 모아 한국 음식을 해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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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SNS에 '한국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나요?'라는 글을 올렸는데 댓글이 정말 많이 달렸어요. 그렇게 인연이 닿아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저는 한국을 정말 사랑해요. 제가 사랑하는 걸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다는 게 기뻤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뒀어요. 사실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일을 꿈꿨는데, 어쩌다 보니 영어 학원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써뒀거든요. 면접을 볼 때까지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 했는데, 직접 해 보니 웬걸,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건 두려워했어요. 단순히 중학생 때 친구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은 이걸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즐거워요. 저도 이런 제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어요.






Q. 전반적으로 삶이 계획과는 다르게, 그러나 더 멋지게 흘러왔네요. 거주할 나라나 직업처럼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무엇을 최우선으로 두나요?


오히려 깊이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때그때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요. 그래서인지 ‘너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말을 꽤나 들었어요. 하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당시의 제가 최선의 선택을 내렸을 거라는 걸 알거든요. 후회할 필요가 없는 거죠.


KakaoTalk_20250722_042336599_01.jpg 2020년, 친구들과 새해를 맞이하며


거주할 나라나 직업을 선택하는 중대한 결정에 있어서는 더더욱 걱정이 없어요.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제가 너무나 다른 것을 원할 수도 있잖아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 그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단기적인 목표를 주로 세우죠.


제가 면접을 볼 때 가장 무서워하는 질문이 바로 "5년 후에 본인은 어디에서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예요. 저는 정말로 제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어요. 당장 취미만 해도, 끝도 없이 새로 생겨서 이러다 5천 개 되겠다 싶은걸요.






Q. 요즘의 일과가 궁금해요. 나에게 보통의 하루란?


보통 일이 오후에 몰려 있어요. 느지막이 일어나서, 별일이 없으면 헬스장에 가려고 노력해요. 오후 3시까지 학원에 출근해서 영어를 가르치고, 8시에 퇴근합니다. 일주일에 며칠 정도는 퇴근 후 한국어 과외를 해요. 온라인 수업을 마치면 밤 11시 정도가 되는데, 그 후로는 새벽까지 수업 준비를 합니다. 문법 공부도 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만들어요.


휴일은 별다를 게 없어요. 친구를 만나거나, OTT를 보거나, 개인 공부를 하거나…. 아,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도 하려고 하죠. 병원에 간다든지, 은행 업무를 본다든지요. 귀국하자마자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여유가 없었거든요.






Q.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건 참 매력적이에요. 요즘에는 무슨 재미로 사나요?


여름 과일이요! 이상하게 한국에 올 때마다 여름이 아니었더라고요. 그래서 여름 과일을 꽤 오래 못 먹었어요. 올해는 꼭 샤인머스캣을 먹고 싶어요. 요 며칠 사이 수박이랑 복숭아는 실컷 먹었고요.


국내 여행에 빠져 있기도 해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다른 도시로 가 보려고요. 지난달에는 대전에 다녀왔고, 이번 달에는 묵호에 갈 예정이에요! 제가 한국에 온 뒤로, 해외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 여행을 많이 오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어디를 보여줄까 고민하며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7월은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많은 달이라서, 이것만으로도 너무 신나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어요. 당장 다음 주에 만나는 친구와의 하루도 기대돼요. 즐거울 일만 남았죠.






Q. 주어진 삶을 아낀다는 게 눈에 보여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요?


'자유'예요. 그중에서도 온전한 제 선택권을 중시해요. 아주 어렸을 때는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절대 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딱히 이유도 고민해 보지 않고 따랐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선택을 자꾸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게 최선이었을까? 정말? 왜? 이미 마무리된 상황에 저만 혼자 얽매여있는 거죠.


그때 느꼈어요. 처음부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되돌아보게 되고, 결국 저 혼자 그 자리에 남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저에게 있어 좋은 선택이냐, 나쁜 선택이냐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을 스스로 했는가'예요.






Q. 보통 'MZ하다'라고 표현하는 특성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이 질문이 가장 어렵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MZ라는 단어가 아니었을 뿐 모든 시대에 젊은이는 있었잖아요. 그러니 MZ한 게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아요. 예, 아니오로 답해도 되는 질문에 이런 답을 하는 것이 MZ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MZ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칭찬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비난하는 말로도 쓰이니까요. 무슨 뜻이지? 칭찬일까, 욕일까? 고민하게 되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그냥 '너답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 의중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나 자신의 색을 지켰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고요.






Q. 수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외교관만은 변치 않는 꿈이라고 하셨어요. 언젠가 외교관으로서 훌쩍 떠나는 날이 올까요?


당연하죠! 당장은 외교관과 관련 없는 일들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추후 외교관이 되었을 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또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이야기가 많은 외교관이 되고 싶거든요. 결국 제가 지나온 모든 것이 외교관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공부야 언제든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요. 조바심 내지 않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제가 사랑하는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에요.






Q. 사실 '공부'라는 게 많은 이에게 일생일대의 적일 텐데요. 그래서인지 공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시작하면 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멋져 보여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며 살아가고 싶나요?


살아있는 한 영원히요. 공부를 ‘언제든 시작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건 나이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공부를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정말 제 호기심을 해결할 방법으로 바라봐요. 그러니 ‘24살까지 공부를 마치고, 26살 전에는 취업하고….’ 이렇게 쫓기듯 살아갈 필요가 전혀 없는 거죠.


다양한 공부법을 접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찾으러 나가던 청소년기의 경험이 아주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고요. 또 그런 활동을 위해서는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도 늘어났던 거죠. 만약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서 책만 보는 것'이 공부의 정의라면, 저는 절대 해내지 못할 거예요. 전 누워만 있으래도 한 자세로 길게는 못 있거든요.


한때는 과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유전자에 관련된 수업을 듣다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수업마다 내용을 조금씩 배우다가 마지막 회차에서 그 내용을 한 줄로 쭉 이어보게 됐죠.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거예요! '아, 이 과학자가 이런 실험을 한 이유는 이거였구나.', '이 실험이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이런 영향을 미쳤구나!' 이렇게 흐름을 이해하고 나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이전에는 과학을 단순한 암기 과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제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배움의 기쁨이 저에겐 너무 소중해요. 궁금한 것을 하나씩 알아가며 느끼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래서인지 공부가 마냥 하기 싫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죽기 직전에 또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떡하지?' 고민해요. 그건 상상만 해도 억울하거든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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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제 동생들을 자랑하고 싶어요! 사진에서처럼 전 그들에게 늘 뒷전이지만요. 둘째는 요리, 특히 전통 한식을 좋아해서 현재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한식조리기능사에 합격했어요! 동생들이랑 나이 차이가 커서, 어렸을 때 같이 산타 할아버지께 드릴 쿠키 만들기, 당시에는 생소했던 아보카도 요리 같은 걸 많이 했었거든요. 이때의 기억이 좋아서 요리를 전공하고 싶어졌대요.


막내는 저와 많이 싸우지만, 제 에브리띵-메이트이기도 해요. 여행도 항상 같이 다니고, 음식 취향까지도 똑같거든요. "마라탕 먹으러 두 시간 걸어가자!", "한밤중이지만 지금 당장 노래방 가자!" 같은 터무니없는 제안을 서로에게 맘껏 던질 수 있어요. 제가 영어를 쓰는 모습을 보고, 막내도 초등학생 시절부터 혼자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제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성장했답니다.


중학생일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커서 아이를 낳았는데, 제 아이보다 동생들을 더 좋아하면 어쩌나. 주변 어른들은 모두 웃어넘기셨지만, 저는 아직도 동생들을 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해요. 미안한 점도 많지만, 제가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직 사춘기인 그들에게는 먼 얘기 같지만요!






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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