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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98년생의 집필기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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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박연이에요. 저는 저를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1998년에 태어났고요. 202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올해부터 시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시를 써 왔어요.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 나갈 수만 있다면,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작품 활동이에요. 원고 청탁을 받아 원고료를 받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소정의 계약금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 생활하기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문학 수업을 하고, 독서 논술 첨삭 일도 해요. 시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제가 세상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더 많은 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요.






Q. 직업이 '시인'이라고 하면 아무도 밥 사달라거나, 보험 가입하라는 말을 안 한다,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저도 작가로서 많이 공감하는 부분인데요. 2025년 한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저는 문예창작과를 나왔는데, 졸업식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앞으로 여러분이 좀처럼 듣지 못할 말을 해주신다고요. 그건 바로 “여러분, 부자 되세요!” 였어요. 한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또 이 세상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본주의와는 등 돌리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시인도 돈을 벌어요. 원고료를 받고, 책 계약금과 인세를 받아요. 다만 아주 소액이에요.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무척 적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시인은 따로 직업을 가져요. 경제적 불안정성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청년 저축 계좌 같은 국가 지원 사업 신청을 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워요. 소득 증빙 서류를 준비하려 할 때, “예술가의 소득”에 대한 고려는 없거든요. 한국의 예술가들은, 직업적으로 언제나 논외의 대상 같아요.






Q.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사실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올해로 시를 쓴 지 10년째, 지나온 시간 중 어딘가에서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 시를 쓰던 순간은 기억해요. 10년 전 저는 소설을 배우고 있었는데, 소설 선생님이 시도 써 보라고 권했어요.


처음으로, 시는 어떻게 쓰는 것인지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어떻게든 누군가의 시를 모방해서 한 편을 완성한 게 제가 처음 쓴 시였어요. 그리고 그 시를 보고 가능성을 보셨던 시인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때부터 그 분께 시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순간이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같아요. 그때는 몰랐지만요.






Q. 그 결심으로부터, 정말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문단에서 활동이 가능한 시인이란, 저에게 아주 먼 존재였어요. “문단에서 활동 가능한”이라는 이상한 수식을 붙인 이유를 해명해야 할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지만,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거나 큰 출판사에서 시집 계약 제안을 받기 위해서는 등단이라는 과정이 필요해요.


문단에서는 등단을 한 사람만을 시인, 소설가라고 불러주거든요.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래요. 요즘은 등단 전 시집을 먼저 내는 시인들도 있지만 아주 소수예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든 인정받을 만한 매체가 필요한 거죠.


KakaoTalk_20250717_162018319_06.jpg 등단 후, 첫 낭독회에서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며 시를 썼지만, 등단이란 너무 멀게 느껴졌어요. 기본적으로 등단이란 제도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요. 백일장 형식으로 학생을 뽑는 문창과에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모순이죠. 그러다가 학부 2학년 때, 예상치 못하게 괜찮은 문예지의 최종심에 올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많이 배출한, 등단을 한다면 그곳이 좋겠다고 점찍어 둔 문예지였어요.


그때가 저에게는 첫 투고였고, 원래 내지 않으려다 친구의 권유로 내게 된 거였어요. 두 분의 심사위원이 각각 다른 후보들을 언급한 심사평을 써 주셨는데, 그중 두 분 모두가 언급한 것은 그해 당선자와 저뿐이었어요. 생각지 못했던 기쁨이었어요. 지면에 대한 욕심이 그때 많이 생겼어요. 등단이 또 다른 제도권에 편입하는 거라고 해도, 한국에서 계속 시를 쓰기 위해 제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고요.


그 뒤 여러 문예지와 신춘문예에 시를 투고했고, 그러다가 올해 호명을 받았어요. 투고라는 건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에요. 많게는 천몇백 명 가까이 작품을 내는데, 그중에 1등을 해야 등단할 수 있거든요. 2등도 안 돼요. 그게 진짜 이상하죠.






Q.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울고 있는 사람의 곁에, 소리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어요. 이 세상에 관심을 두는 것 역시 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완전히요. 시인의 가장 중요한 일이 세상에 관심을 두고, 감각하는 일이에요. 시는 자칫 아름답고 감상적이기만 하다는 오해를 받아요. 그렇지만 시인은 누구보다도 이 세계를 넓게, 그리고 속속들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같아요. 또 시인은 마음을 돌보는 존재라는 생각도 하는데요.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 나아가 타자의 마음, 무생물의 자리까지 상상해야 한다고 믿어요.


유니세프에 따르면 한 나라는 2023년 10월 7일 이래 매일 아동 27명을 살해하고 있다고 해요. 어떤 무기 회사는 드론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설정해 집요하게 쫓아가 살해하는 영상을 광고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것이 차라리 저에게 가까운 슬픔이라면, 정당하게 분노할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 제 아이를 살해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많은 노동자가 근무 환경 때문에 죽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벌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가볍게 취급되곤 해요. 이 일들은 일상의 우리에게서 먼 일처럼 느껴지지만, 분명히 연결된 일들이에요. 혐오는 집요하고 무책임해요.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무관심은 끔찍할 정도고요.


이 모든 일은 우리 개개인의 책임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이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하게 하여, 타인을 돌볼 여력이 없게 만든 이 사회의 잘못이기도 해요. 이런 사실을 생각하다 보면 무력해지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기록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Q. 2등도 안 되고, 오직 1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라. 평가 기준도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니, 1등이 되는 데 정도가 없잖아요.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는 건 일종의 자기 수련 같아요.


맞아요. 엄청난 자기 수련 같아요. 등단이란 결국 누군가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때로 어떤 시인들은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지 고민에 빠져요. 저도 그런 적이 있고요. 평가를 받는데 익숙해지되, 그 평가는 결국 타인의 것이라는 걸 항상 생각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감각을 믿고 쓰는 것인데, 저도 알고 있지만 잘 안 돼요. 자꾸 요즘 트렌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저는 원래 시를 쓴 뒤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 좋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이 되었거든요.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은 보여주지 않고 혼자 만족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투고하는 과정에선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더욱 필요해요. 가장 빛나는 글은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을 때 나타나요. 글을 쓰면서, 나를 지치지 않게 돌보아야 해요.






Q.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시인을 꿈꾸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먼저 헤맸던 사람으로서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당신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를 찾으세요! 친구여도, 선생님이어도 좋고, 또는 가족이어도 괜찮아요. 대신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면 좋겠어요. 저는 몇 사람의 사랑을 양분으로 계속 쓸 수 있었거든요. 그들을 많이 귀찮게도 했어요. 스스로 시가 별로라고 푸념하면, 충분히 좋다고, 너를 믿을 수 없다면 나를 믿으라고 이야기해 주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KakaoTalk_20250717_161342638_04.jpg 16인의 작가가 모여 만들어 낸 독립 출판물, <우리 마침 사이보그>


시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기도 했는데요. 학교 지원을 받아 독립 출판물을 만들기도 하고, 쓴 시를 모아 혼자 시집을 만들기도 했어요. 제 시로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고요. 독립 출판물과 그림책이 각각 2023년, 2024년 서울 국제 도서전에 전시되는 기쁨도 있었어요.


작년에는 시를 물성으로 만드는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인공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연출한 전시였는데, 떨어지는 물 부분을 저의 시 구절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스스로의 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계속 써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Q. 하루를 어떻게 채워가는지 궁금해요. 시인의 일과는 어떤가요?


대체로 고정된 일정이 없어요. 매일이 다른데요. 오늘 오전엔 독서 첨삭 일을 하고, 시 수업을 했어요. 혼자 점심을 먹고, 집에 새로 온 책을 뒤적여 보고, 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만 했고요. 보통의 날들이 이래요. 읽고 쓰는 일을 기본으로 두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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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시를 쓰지 않더라도 메모를 만들거나, 일기를 쓰거나, 산문을 써요. 저는 산문에서 통로를 만들어 시를 쓸 때가 많거든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이른 오전이나 밤에 산책을 해요. 이른 오전 하천의 새들과, 밤의 하천 속 물고기를 보는 걸 좋아해요.






Q. 조금씩 삶을 가꿔나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요즘에는 무슨 재미로 사나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삶을 가꿔나가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아요. 유튜브를 볼 때도 일상 브이로그를 선호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게 좋아요. 귀엽고 아름다운 물건을 찾아내는 것도 좋아해요. 여행을 가면 꼭 소품 가게에 방문하는 편이고, 온라인으로도 많이 구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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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빈티지를 아주 좋아해요. 오늘 오전 수업 전에는 “Point Of View”라는 문구 편집숍을 온라인으로 구경했어요. 책에 밑줄을 그을 수 있는 투명 색연필이 새로 나온 거예요. 투명해서 자국은 남지 않지만, 밑줄 긋는 기분은 낼 수 있대요. 책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가 떠올라서, 그 친구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Q.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요?


사랑이 제일 중요해요. 그런데 타자와 스스로를 함께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균형을 맞춰야 건강하게 관계 맺으며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만 사랑해도, 타자만 사랑해도 생활이 무너져요. 그런데 사랑을 하려면, 우선 살아 있어야죠. 영혼이 되어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영혼이 되어본 적 없어서 그 상태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지는 모르니까요.


제가 사는 이유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게 있는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면, 또 더 이상 누구도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라져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거든요. 당장 밖으로 나가서, 흐린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사랑할 수도 있어요. 제게 사랑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내면 사랑할 수 있어요.






Q.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하지만 모르기엔 아쉬운 아름다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혹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나만의 방식에 대해 알려주신다면요?


아! 너무 어렵네요. 마음 같아선 아름다움에 대한 사전을 적어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이 여름이니까 여름에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할래요. 맑은 여름날, 커다란 나무 아래 가만히 서 있으면, 빽빽한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쏟아져요. 그 덕분에 바닥에는 일렁이는 빛 그물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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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보다가 눈을 감으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져요.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가 나는데요. 눈을 감고 들으면 그 소리가 꼭 파도 소리 같아요. 밀려가고 밀려오는 초록의 파도를 경험해 보시면 좋겠어요. 도시에서도 가능하지만, 숲에서는 더 크게 감각할 수 있어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선 모든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모든 것이 소중하고 무엇 하나 모자란 것이 없다는 태도로 살아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어떤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천진한 마음.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 좋아요. 모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하거든요. 모르는 척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거예요. 항상 어린아이의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Q. 보통 'MZ하다'라고 표현하는 특성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물론 MZ한 시인들도 있긴 해요. 파격적인 시를 쓴다거나, 기존의 문단 관습을 따르지 않고 매체를 개발하여 글을 업로드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를 테면,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선경)"라는 제목의 시도 있어요. 그런 시인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그 부류에 속하지는 않는 듯해요. 항상 클래식한 걸 좋아하거든요. 소품도 빈티지를 선호하고요.


아, 전통적인 관습을 벗어나려고 하는 편이니, 그런 부분은 MZ하다고 부를 수도 있겠어요. 타투를 한다거나, 굳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다거나, 평생 직장을 가지지 않고 프리랜서로 산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거나…. 그런 다양한 삶의 선택에 모두 찬성하는 사람이거든요. 다른 세대의 누군가가 저를 본다면, 충분히 MZ해 보일 것 같아요.






Q. 살아가며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어떤 성취가 될 수도 있고, 태도가 될 수도 있고요.


전집이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꽤 허황된 목표가 있어요. 제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나라에서 읽히면 좋겠어요. 인기를 얻는다면 외국에서도 독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수 있다면 좋겠고요. 제 롤모델은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예요.


KakaoTalk_20250717_162018319_05.jpg 서울국제도서전에 전시된 저서 <냄세이>


아마 신인이라서 떠올릴 수 있는 목표 같아요. 몇 년이 지나면 그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죽기 직전에, 다 못 써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일 거예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부지런히 쓰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함께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이 순간 너머의 당신이 궁금해요.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으로 찾아오세요.






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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