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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Oct 30. 2022

따듯한 조지아

트빌리시 그리고 므츠헤타 



긴 여행을 떠나면서 꼭 가야지 마음먹었던 나라가 있다. 몇 년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서 아쉬움만 잔뜩 남겼던 곳. 조지아. 터키에서는 지독하게도 비만 왔다. 터키에 있던 1달 중 3일을 빼고 다 비가 왔던 터라,  따스한 햇빛이 그리워졌다. 그곳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며 기도했다. 


‘이번에는 날씨가 좋았으면’


비행기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꿉꿉하지 않은 건조한 공기가 볼을 스쳤고, 따듯한 햇빛과 맑은 하늘을 보고 나니 자연스레 입 꼬리가 올라갔다. 비행기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지 들어갈 수 있는 트빌리시 공항. 공항에 들어서자 원숭이 꼬리같이 생긴 조지아 언어로 된 표지판을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조지아에 왔구나’ 공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공항을 빠져나왔고, 곧장 트빌리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천천히 풀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하고 나서는 짐을 서둘러 풀을 필요도 없었고,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괜찮았다. 하루 종일 게으름을 피워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으며 한껏 게을러져도 충분히 그 나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으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달 살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다. 물가가 싼 나라인 만큼 마을 곳곳 허름한 집들도 많이 보였고, 냉전시대 때 소련의 영향을 받은 조형물도 곳곳에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싸늘한 조형물보다는, 골목으로 스며드는 햇빛과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들이 마음을 따듯하게 해 주었다. 지하차도에는 젠틀한 아저씨 한 분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고, 내 카메라를 보며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지하차도에서 울리는 기타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분위기를 멋지게 만들어준 아저씨에게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털어 보답했다. 눈웃음으로 인사를 보낸 후 숙소로 향하는 길은 모든 게 좋았다. 첫날부터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조지아의 날씨는 따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도인 트빌리시의 날씨가 따듯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추웠던 날씨가 조금은 풀렸다는 것을 증명하듯 다들 옷차림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도 한식 사랑은 여전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핑계로 조지아 음식은 저 멀리 한 채, 한식당을 드나들었다. 더욱 좋았던 점은 저렴한 물가 덕분에 이것저것 먹고 싶었던 한식들을 잔뜩 시켰고, 음식 맛 마저 훌륭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십 대 초반에는 한식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먹을 수 있으니, 최대한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자 주의였는데, 어렸을 적 어른들과 여행을 할 때 왜 한식을 그렇게 찾으셨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주 드나들다 보니 사장님과 어느 정도 안면도 익히게 되었고, 트빌리시 맛집을 알려주셨는데 맛은 당연히 보장된 맛집이었다. 그렇기에 신뢰도가 더욱 올라갔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는 날 좋을때 가보라며 근교 여행지인, ‘므츠헤타’를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곧장 므츠헤타에 가는 법을 찾았다. 


트빌리시에서 차로 30분에서 1시간 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날씨를 보니 트빌리시 보다 3도가 더 높은 곳이었다. 3도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따듯함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곧장 신이 났다. 이곳은 투어로 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고, 눈앞에 보이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택시에서 내려 성당까지 걸어가는 길은 5분 채 걸리지 않는다. 거리 곳곳이 아기 자기한 작은 이 마을은 5세기경은 조지아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큰 문 앞에서 나는 감탄을 자아냈다. 가꿔진 초록색 잔디와 세월을 나타내는 성당, 그리고 파란 하늘의 조화가 마치 그림과도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인지.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다. 나는 하늘 보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을 비워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인데 그러다 보면 잠이 솔솔 와서 여행하다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늘이 적절히 있는 잔디밭을 찾아 앉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집중했다. 벤치에 함께 앉아 계시는 노부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까지. 파란 하늘이 도화지가 되어 그 모든 것이 그림이었다. 따듯한 날씨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듯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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