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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Oct 30. 2022

좁고 기다란 창


보통 여행을 하며 이동을 한 날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거나 아니면 숙소에서 푹 쉬는 편인데, 오늘은 후자를 택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차가운 공기와 깜깜한 하늘은 지금이 잘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주인 할머니께서는 따듯한 티를 한 잔 내어 주셨고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금세 몸과 마음이 노곤해졌다. 내가 지내는 방은 작은 2인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벽 쪽으로 나무 침대가 하나씩 붙어있는데 침대 사이로는 작은 창이 하나 있다. 넓은 창은 아니지만 굉장히 긴 창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 긴 창을 매우 사랑했다. 도착한 날은 너무 늦어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창은 다음날 아침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몇 시에 잠든지도 모르게 이른 밤에 잠에 들었고 그래서인지 눈을 떴을 때는 아침 6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볕이 들지는 않았지만 창 너머로 쭉 뻗어 있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앙상할 법도 한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그저 나를 반기는 것만 같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부려봤다. 핸드폰을 만지작해보기도 하고 기지개도 쭉 켜어보기도 하고 이불을 몸에 둘둘 말아 이불속에 몸을 파묻혀 보기도 했다. 그런 게으름을 한껏 피우고 있을 때 툭- 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금세 빗방울은 창문을 가득 채웠다. 유리창을 때는 소리가 귀에 알맞게 들어왔고 포근한 이불속에 있는 그 시간과 그 고요함이 행복을 불렀다. 행복을 잔잔히 느끼다 보니 어느새 소리는 잠잠해졌고 비는 그쳤다. 나는 가만히 창에 매달려있는 빗방울들이 아래로 흐르는 모습을 십 여분 정도 지켜봤다. 그리고 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포근했던 이불속에서 나와서 창가로 다가가니 어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볼 수가 있었다. 마구잡이로 펼쳐진 들과 건너 건너 보이는 집들, 그리고 집 너머로 거친 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날씨가 풀리지 않아 눈에 덮인 산들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좁고 기다란 창을 사랑하게 되었다. 카즈베기라는 동네 전체가 아름다운 곳이라 어디서 봐도 예쁘지만, 나는 날이 좋을 때도 날이 흐릴 때도 나는 그 좁고 긴 창이 있는 곳을 항상 선호했다. 그 창은 방의 아늑함이 기분을 더했다. 매일 아침 그 기다란 창을 보며 일어났다. 결국 그 아늑함이 좋아 이틀만 머무르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 열흘을 머물렀다. 물론 숙소에서 창 하나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튼튼해 보이지 않는 침대와 손잡이가 거칠게 달려있고 40인치 캐리어가 거뜬히 들어갈 것 같은 투박한 크기의 장롱 하나. 방에서 조금만 걸어도 마루 바닥에서 일정한 톤으로 나는 끼익- 소리까지도 좋았다. (밤에 들으면 무서울 법하다) 하지만 그 창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까지 좋은 방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어디 하나 완벽하지 않은 방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던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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