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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Apr 15. 2024

시작은 일단 쓰기

천리길도 당연히 한 걸음 부터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해보라고 하면 대개는 글을 잘 못 써서 하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결국 잘하려고 하다가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블로그에 내 이야기를 써온 지 5년이 되었다. 독립출판으로 책도 한 권 내긴 했지만 나도 아직 글을 잘 쓰지는 못한다. 그냥 계속 쓰고 또 쓸 뿐이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일단 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그저 내 삶을 제대로 잘 살아내려 노력한다. 내가 사는 삶을 글로 쓰기 때문이다.


원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제주로 이주해 왔다. 여전히 삶은 똑같았다. 육지에서는 남편과 맞벌이하면서, 제주에서는 자영업을 하며 먹고 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제주의 자연을 누리며 사는 삶에 만족하긴 했지만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러려고 다 버리고 제주로 왔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 왔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연한 기회에 도서관에서 [서툰 엄마]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엄마로서도 나로서도 사는 게 서툰 나였기에 제목만으로도 자연스레 이끌렸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잘 챙기고 있는지 혹시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혹시 그렇다면 나부터 꼭 챙기라고 말했다. 그제야 울산에서 제주로 직장을 그만두고 삶의 터전까지 옮겨왔지만 내가 방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몰랐던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삶'보다 '나'를 먼저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18년 서른여섯의 어느 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블로그에 글을 썼다. 이제 더는 이렇게는 안 살겠다고, 죽어가는 나를 다시 살리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블로그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글쓰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나의 간절함을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털어놓기 힘들었다.


변해가는 나의 마음과 감정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쓴 글들은 맞춤법도 문단도 맞지 않는, 그냥 보통 엄마의 일기 글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이웃들이 내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힘내라는 댓글도 남겨주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받는 위로는 나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마음 편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복잡했던 내 마음을 블로그에 글로 털어놓고 나니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나였다. 쓰면서 한 번 읽고, 쓴 글을 발행하고 나서 다시 읽었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면 댓글을 확인하러 갔다가 또 읽곤 했다. 별 기대 없이 블로그에 글을 썼지만, 내가 써낸 글들을 읽으며 나는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블로그로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배우지 않고, 잘하려 하지 않고 일단 쓰고 봤던 처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일단 한번 써보자. 최대한 진심을 담아, 있는 그대로 써보면 좋겠다. 잘 쓴 글보다 진정성 있는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계속 쓰고 또 쓰야지만 언젠간 잘 쓰게 되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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