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도서관 글쓰기 강사로 출강 중인 레베카 씨는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수강생들과 에세이 발표 주제를 놓고 자유토론을 한다. 정해진 주제는 없다. 쓰고 싶은 주제나 소제를 생각해 오시면 된다 하였다.
작년 봄부터 글쓰기 강의를 시작한 레베카 씨는 화성시 관내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전전하며 4번의 글쓰기 강의를 진행해 왔다. 마지막 회차는 대망의 에세이 발표를 하고 ‘짠’하고 끝내는 것이, 강의의 목표라면 목표이고 결과물이라면 결과물이겠다. 허나 지금까지 에세이를 발표한 50여 명의 수강생 중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었다.
게다가 이번 강의는 거의 폭망 수준으로 수강생이 줄어 남은 수강생은 고작 5명. 치졸하게도 나는, 아니 레베카 씨는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우리 끝까지 갑시다. 동맹이여 동맹.’을 외치며, 준비해 간 초코파이와 몽쉘통통과 자유시간 등등을 나눠드리곤 했다. 레베카의 강의력을 ‘의심’하는 도서관 사서분의 쓴웃음을 감당해 내며, 레베카 또한 억지로 억지로 “아프고 싶다... 이노무 몸뚱아리 독감도 안 걸리네...”를 중얼거리며 철근 같던 발걸음을 강의실로 옮기곤 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차 에세이 발표 전 가지는 주제-소재발굴 자유토론 시간에 5명 중 2명이나 ‘사랑’이라는 소재로 글을 쓰겠다는 게 아닌가. 에에? 사랑이라뇨. 참으로 생경하지 말입니다. 일단 한 수강생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인지라, 사랑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었다. 물론, 그때 그 감정 - 누군가에게 설레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그 감정 - 이 너무나도 아득하여 무어라 멘트를 쳐 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나 강산데... 로맨스와 에로스에 대해선 딱히 해 줄 말이...’ 난감했다. 나 너무 40대 50대 아줌마들하고만 놀았던 걸까. (부끄러운 행동을 한 레베카에서 다시 나로...)
나에게 사랑이란... 나는 솔로 ‘돌싱특집’에 나오는 정숙 옥순 영숙에 빙의되어, 남성 출연자 상철 영호 영철 중에서 누가 나와 가장 잘 맞을지를 상상 속 나래로 타진해 보는 것이 전부... 그들의 데이트 장면을 보며 저 테이블에 내가 앉아 있다. 내가 저들과 대화를 나눈다. 내가 저 남자들과 눈 마주치며 수줍어한다. 내가 영호와 간들간들 썸을 타다가 상철로 갈아탄다. 오메... 재미진 거! 정도로 마무리된다. 입을 헤 벌리고, 초집중하여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며, 현실의 남편인 박 모 씨는
“에이그, 이 아줌마야! 니는 또 그거 보고 있나!”
를 마, 경상도 사투리로 박력 있게 외쳐주어 나를 또 현실세계인 이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쓰읍, 하.
두 번째 사랑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선생님은, 50대 중반이시다.
“선생님, 제가요 6남매 중에서 막내로 자랐어요. 나는 막내인데... 우리 엄마랑 언니 오빠들이 나를 너무 안 챙겨주는 거예요. 자랄 때 너무 섭섭했어요. 나는 막낸데... 다른 집은 막내를 다들 그렇게 이뻐라 한다는데 우리 엄마랑 언니 오빠들은 왜 나한테 그렇게 안 해 주지.. 그래서 결혼하고 나는 내 가족만 챙겼어요. 우리 아들. 우리 남편. 그렇게요. 그런데 이제 좀 바꿨어요. 내가 생각해 보니, 언니랑 오빠들이 나를 귀여워해준 장면이 자꾸 떠올라요. 그게 아주 어릴 땐데요. 내가 한 7살에서 10살, 아니 7살에서 15살 정도에 있던 장면 들이요. 무슨 글을 쓸까... 어떤 것을 쓸까... 고민할 때마다 그때 우리 언니 오빠들이 나한테 어떻게 해 준 장면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아, 그러시구나.”
“근데 선생님, 나는요 글을 잘 못 써요. 써 본 적도 없구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보편적 가치로 결말을 짓거나 어떤 성찰이나 고찰 없이... 그냥 기록처럼 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긴 글 쓰는 글쓰기 수업인지 몰랐어요. 그냥 단문 잘 쓰는 법을 배우려고 한 거지. 근데 저도 선생님이 말한 용기, 그 용기 내서 길게 한번 써 볼게요. 그냥 내가 생각나는 몇 가지 장면을 기록하고는 싶어요. 우리 언니랑 오빠들하고의 그런 거. 그거는 꼭 기록은 하고 싶어요. 언니랑 오빠들이 나를 사랑해 준거 같아요... 이제는 좀 알 거 같아. 앞으로도 이런 장면들을 기록은 해 두어야겠다 싶구요. 그래도 되죠?”
글이란 무엇이기에. 에세이란 무엇이기에. 좋은 글이란 무엇이기에. 작품이란 무엇이기에.
나는 자신만의 관찰, 고찰, 통찰, 성찰이 단 한 줄이라도 들어간 글을 써 오시라고 9회 차를 밀어붙였다. 이 선생님의 담담한 고백 앞에 내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배운 모든 지식과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나를 생각게 되었다.
“저는 글이라 함은 이래야 한다고. 제가 배운 데로, 제가 익힌 대로, 알려드리려고 했는데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무릇 글이라 함은 이래야 한다라는 게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팍 하고 깨뜨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문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좋아서 쓰는 글. 내가 쓰고 싶은 글. 나를 책상 앞에 앉히게 하는 글이면, 저는 다 좋은 글이라 생각되네요.”
2024년, 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은 천명관의 '고래'다. 스토리도 재밌지만, 이다지도 ‘막’ 쓸 수 있나에 감탄하며 읽었던 책이다.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의 심상평을 은희경 작가는 이렇게 썼다.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기존의 ‘무릇 소설이라 함은’에 그 어떤 빚도 지지 않으며, 자신만의 언어로 막 쓴 글에 반했음에도, 나는 ‘무릇 에세이라 함은’을 가르치려 했던 것일까. 흣. 이제 글쓰기 강사질에도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