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행 시작에 앞서, 사소한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다. 탑승 수속 마감을 아슬아슬하게 했고, 스위스 첫날 숙소였던 공항 앞 캡슐호텔(1박에 무려 13만 원...) 객실을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인증사진도 없을까. 무엇보다 가장 난감했던 건 여행 전날 바꾼 스마트폰 esim 자체가 익숙지 않아 먹통이 될뻔했던 아찔한 순간. 시차가 바뀌어 적응이 안 되는 상태에서(한국보다 7시간 느림) 그 좁디좁은 캡슐 안에 갇혀 해결방법을 찾느라 정말 진땀 뺐다. 현지 시간으로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고생했던 기억은 영원히 잊고 싶다. 정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스마트폰 esim을 정상작동시키고, 첫 여행지를 루체른으로 정하고, 어마어마한 7월 성수기 스위스 숙소 비용에 놀라며 호스텔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성수기+주말 버프로 15만 원. 루체른이 관광도시라서 물가가 어마어마한 곳이었단 걸 몰랐지ㅠㅠ) P라서 무계획인 게 아니라, 나란 놈이 게을러터진 게 문제다 문제.
무사히 날이 밝았다. 취리히 공항에서 루체른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이동하던 중, 반가운 글자를 발견했다. 스위스 여행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는 장소, Coop! 아침을 못 먹은 공복 상태였기 때문에 본능에 이끌려 Coop(쿱) 마트로 향했다. (원래 배고플 때 장 보면 안 되는데, 그 위험한 일을 제가 또 해내고 말았네요) 입구 옆에는 여름 유럽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납작 복숭아를 비롯해 다양한 색깔의 과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납작 복숭아 ㅈ..맛, 아니 ㄱㅐ, 아니 진짜 맛있었다. 황도+백도+자두를 섞은 느낌이랄까? 올여름에 유럽여행 가시는 분들은 납작 복숭아가 보이면 일단 사세요. 최대한 빨간 놈으로다가. 1일 1납복 추천드립니다.
루체른 여행기 쓰려다가 급 자기반성하고, 납작 복숭아 예찬론자가 되어버린 상황.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보이는 여행은 낭만 그 자체이지만, 사실 내 여행은 이토록 덜렁대고 계획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날것 그대로다. 그러니 이번 스위스 여행기만큼은 포장은 덜어내고, 진짜 내가 맛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남겨보려고 한다.
스위스 여행자에게 천국 같은 그곳, Coop 마트.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호박 고ㄱ...' 말고 '납작 복숭아'!
납작 복숭아를 봉지에 담아서 직접 무게를 재고 라벨을 출력한 뒤, 봉지에 붙이면 되는 이 쉬운 걸 누가 헤매지? 네 접니다.
스위스 여행 7일 동안 기차 정말 실컷 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같은 풍경 덕분에 기차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더라.
호기롭게 도전한 호스텔 숙박의 최후
스위스의 흔한 호스텔 마당뷰. 루체른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멋진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위스는 호스텔 전망도 예사롭지 않다. 물론 가격도 예사롭지 않다는 게 함정.
이 거실 뷰에 낚여 루체른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그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루체른의 지리도 잘 모르기도 했고, 스위스의 여름 성수기 숙소 가격에 대한 감이 1도 없기도 했고, 오랜만에 외국 호스텔에서 숙박해 보자 호기를 부린 내 잘못이지 뭐. 하지만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 아니었던가? 바로, 배낭여행 모드를 접고 여름휴가 모드로 돌입해서 매일매일 아고다에서 호텔을 열심히 검색했다. 코로나 이후 높아진 관광물가에 여름 성수기라 호스텔과 호텔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고, 숙소에서 혼자 편하게 쉴 수 있었기에 올바른 결정이었다. 덕분에 스위스의 다양한 도시에서 다양한 호텔을 경험해 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지!(그렇게 텅장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