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출근이 하기 싫었다. 눈뜨자마자 ‘내 인생 정말 힘들어!’라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던 그날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득바득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다 사무실 앞 횡단보도에 서서 빨간불을 째려보며 ‘진짜 싫다.’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헉헉 숨이 찼는데, 빨리 걸어서 숨이 찬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걸까? 생각하다 눈앞이 조금씩 흐려지는 걸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입으로 숨을 크게 쉬어도 턱끝까지 물에 잠긴 듯했다. 이내 구역질과 눈물이 한데 섞인 날숨을 토해내듯 뱉어댔고, 반대로 다시 들어오는 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처량 맞게도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며 헐떡이다 겨우 안정을 되찾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실핏줄이 도드라진 공포에 질린 눈언저리와 허옇게 질려버린 부르튼 입술을 보며 ‘문제가 생겼다’라는 걸 직감했다.
[오후 반차] 디자인팀 / 팀장 / 김여름 / 건강상의 이유로 오후 반차를 신청합니다.
오전 업무만 급히 처리한 뒤 병원을 찾았다. 머리와 손, 발끝에 차디찬 무언가를 붙여놓고는 어둠 안에 홀로 남겨진 채 검사를 받았고- 수백 가지 질문지에도 답을 했다. 마주한 원장은 꽤나 너그러운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 말미에, 기어이 내가 예상한 대답을 해주었다.
여름씨는 불안과 강박이 있네요.
머리가 띵- 했다. 나를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가 태어났다. 그것도 불안과 강박이라는 못난 이름을 가진.
불안한 김여름, 강박적인 김여름 이라니!
예민한 디자이너 김여름, 일은 잘하는데 조금 못된 김여름, 차갑고 어려운 김여름, 이런 건 그래도 나름 괜찮은데 불안과 강박이라는 친구들은 쉬이 인정하고 품어주기가 어렵다.
심박수가 너무 빠르네요. 보통 성인들보다 많이 빨라요.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들어본 적 있죠? 그게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긴장이나 경직이 되고 쿵쿵거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지수가 올라가죠. 문장완성 질문지를 보면 ‘불안, 걱정, 강박’ 같은 키워드도 많아요. 당분간은 이 신경계를 안정시킬 수 있는 약을 조금씩 먹어보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겪었던 건 ‘과호흡’입니다. 그것 또한 앞서 말씀드린 이유에서 시작되기도 하니까요. 복용법 설명드릴게요.
퍽이나 인정하기도, 예뻐해 주기도 힘든 단어들이 내 이름 앞에 붙었다.
집에 돌아와 처방받은 약을 먹고는 모로 누워있다가 괜히 또 서러워 조금 울었다. 그러다가는 또 이 세상이 너무 괘씸해져 모두를 원망해보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시작으로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 신입 때 만난 괴팍한 사수, 그러다가는 또 산책 나온 강아지 똥을 안 치우고 그냥 지나가던 아줌마를, 불친절하게 나를 대했던 카페 직원을, 길에 침을 뱉었던 아저씨까지 원망했다. 그러니까 나를 곤두서게 만들었던 모든 사람을 원망하다가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 건가 싶어 ‘허허허’ 하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결심했다.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다는 ‘퇴사’라는 카드를 써야겠다고-.
사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나였고, 조금 더 세밀히 생각해 보면 그건 회사 안에서 일을 하는 나였다. 나는 지나친 성취지향적 인간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일을 잘했다 인정받을 때에만 나를 사랑해주었다. 매일 스스로를 단두대에 올려두고 지냈다. ‘오늘은 잘했어, 그만 목에 찬 칼을 풀어주도록 하지- / 오늘은 너무 실망스러운걸? 너를 마음의 방에 가두고 공개처형해야겠어.’ 이렇게 10년을 넘게 지냈으니 병이 날 만 했고 출근이 싫어질 만했다.
약 때문인지, 식은땀을 조금 흘리며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다음날 회사에 퇴사통보를 했다. 여차저차 인사팀과 대표님과 기나긴 면담을 하고 결국엔 그렇게 바라던 ‘퇴사’를 ‘성공’했다. 퇴사를 성공하다니 그 또한 성취감이 들었다.
나의 퇴사소식을 알게 된 주변사람들 (그러니까 친한 친구가 아니거나- 예전에 어딘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 아니면 업체 부장님들 같은) 이 메시지나 전화를 해서 ‘왜?’를 물어보기 일쑤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조금 고민하기도 했다.
‘아니 글쎄 제가 출근을 하다가.. 아니 그러니까 음.. 과호흡? 아 그게 제가 10년을 그렇게.. 아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기질적으로 조금..’ 이런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아 괜히 더 유쾌하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출근하기 싫어서요!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