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에세이 #2.
술이 아버지의 전유물이었을 시절,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던 안주는 마른안주였다. 땅콩이나 은행 같은 견과류나 멸치, 쥐포, 오징어, 진미채 같은 건어물이 가장 접근성이 좋았다. 맥주집에서 파는 마른안주에는 땅콩 대신 커피땅콩, 오징어 땅콩이 들어가기도 했고, 김 과자도 흔하게 올라왔다. 오징어 대신 한치를 주는 경우도 많았고, 얇디얇은 김이 그나마 몇 장 안 들어있는 봉지 김도 단골로 나왔다.
대학생 시절 내가 자주 찾던 술집에서는 기본 안주로 밭두렁을 줬다. 밭두렁은 조미를 해서 바짝 말린 옥수수였는데, 짭짤하고 고소한 맛에 하나 둘 씹다 보면 어느새 턱이 아파왔다. 나는 이 집에서 대구포에 맛을 들였다. 약한 불로 여러 번 뒤집어가며 구운 대구포는 말랑하고 야들야들하면서 달큰 짭짤한 것이 맥주와 찰떡궁합이었다. 일행들은 항상 노가리파와 대구파로 나뉘어서 안주를 가지고 실랑이를 하곤 했다. 또 다른 단골 맥주집에서는 조미되지 않은 구운 김을 길게 잘라서 간장과 함께 줬는데 맥주보다 김을 더 많이 먹고는 했다.
생맥주를 피처로 2,000cc 혹은 3,000cc씩 팔던 호프집에서는 기본 안주로 뻥튀기 종류인 강냉이, 마카로니나 앵두콘을 자주 내놨다. 일행들과 한 줌씩 집어먹으면 금세 동이 나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늘 리필을 요구하곤 했다. 대학가의 이런 호프집에서는 1만 원에 안주를 3개씩 주는 세트메뉴를 많이 팔았는데 그 안주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조악했다. 이게 정말 쥐포일까 싶은 쥐포튀김, 횟집에서 곧잘 나오는 콘치즈, 달달한 옛날식 떡볶이와 김치전 같은 게 주로 이 세트메뉴에 포함되었다. 골뱅이 소면이나 소시지 야채볶음은 고급 메뉴에 속했다.
점차 '현지' 스타일을 강조한 고급 펍이 많아지면서 팝콘이나 프레즐 과자 등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아무래도 앵두콘이나 밭두렁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초는 좋았다. 같이 나온 살사 소스나 치즈 소스에 찍어먹으면 한 접시는 금방 비웠다. 나초 위에 치즈와 살사를 얹어서 데워 나오는 것도 좋았다.
나초보다 좋은 것은 감자튀김이었다. 감자튀김은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 안주 중 하나다. 두꺼운 것보다는 얇게 썰어서 바삭하게 튀겨 소금을 충분히 뿌린 감자튀김을 좋아한다. 케첩에 찍어 먹으면 감자튀김도 케첩도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요즘은 감자튀김을 찍어먹을 수 있는 많은 소스들이 나와 있지만 나는 역시 케첩이 제일 좋다. 나초처럼 치즈와 칠리소스 등을 얹어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나는 오리지널을 선호한다.
가장 최근에는 집에서 육포를 만들어서 먹었다. 간장과 레드와인으로 만든 소스에 푹 재워서 건조기에 잘 말린 수제 육포는 시판되는 어떤 육포보다도 맛있다. 특히 불에 살짝 구워서 먹으면 정말 한 번에 소고기 2~300그램은 거뜬히 먹게 된다. 육포와 더불어 최근에 자주 찾는 안주에는 먹태가 있다. 바짝 마른 먹태를 노릇노릇 굽기까지 해서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마요네즈 간장에 찍어 먹으면 맥주가 쭉쭉 들어간다. 한 자리에서 먹태를 두 접시 시켜서 먹은 적도 있다.
지금은 무슨 음식을 먹든 반주로 맥주 한두 잔을 곁들이는 게 일상이 되어서 맥주 안주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맥주는 대체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어떤 안주와도 좋으니 그 시절 친구들, 선후배들과 모여 앉아서 왁자지껄 떠들고 깔깔대며 맥주 한 잔 함께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