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참: 탐조의 맛_프롤로그
잡지사 재직 시절, 회의 중에 ‘맛집 리뷰’를 해보자는 화두를 던진 적이 있었다. 라이프 스타일이나 여성지도 아니고 특수지인 카메라 매거진에서 맛집 조명이라니. 발행인이 실소를 터트렸다. 마냥 생각 없이 내밀은 기획은 아니었다. 2021년 발간된 연간 콘텐츠산업백서에 따르면 N사의 블로그 서비스 론칭부터 지금껏 발행된 게시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맛집 리뷰, 상품 리뷰, 여행 후기 순으로 뒤따른다. 당시 운영하던 온라인 구독 서비스에는 출사지 소개 콘텐츠가 필요했다. 나만 알고 싶었으나, 사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명소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촬영 스폿 기사를 만드는 건 우리에게 꽤나 쉬운 일이었다. 찍는 것에 진심이거나 반 미쳐있는 집단이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입량은 콘텐츠의 질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맛집 리뷰는 어떨까. 맙소사. 이거구나. 생각의 강줄기가 급류를 타고 이어지자 반드시 해야 만한다는 촉이 강하게 왔다.
2주 후 <출사의 맛>을 론칭했다. 주는 출사지를 소개하는 알찬 정보 전달, 부가적 장치로는 기사 하단의 맛집 상호명 노출을 통해 검색 유입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치밀한 마케터 이 씨는 지명을 포함해 ‘OO 맛집’, ‘OO 근처 식당’등 키워드 코드를 html로 숨겨두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꼼수에는 아주 도가 텄다.)
해냈구나. 백데이터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멤버십 이벤트 시기와 맞물려 유료 구독자가 늘었고, 여태껏 편차랄 게 없던 그래프가 이륙하더니 곧 순항 고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퇴사를 하며 자식 같은 <출사의 맛>을 들고 나왔고, 살을 덧붙여 이곳에 연재했다.
며칠 전 새 원고를 쓰던 중 B 선배가 내게 “새참”이라는 제목을 꺼냈다. <새 봄>에서 다 풀지 못한 타래를 기어이 짜내겠다는 의지인데, 하필 무한리필 돼지갈빗집에서 정말 무한정 먹는 꼴을 점주에게 보여주고도 성에 차지 않아 ‘불판 갈아주세요’ 버튼을 누른 후였다. 아. 이 오빠는 무슨 드립을 쳐..
불행히도 아이디어 번개는 사건 당일 욕실에서 반드시 푹 젖은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을 낼 때 친다. 새참이라는 버퍼링 굴레가 <출사의 맛>을 회고하게 만든 게야. 국내 탐조지를 총망라한 서적은 다른 이에게서 이미 출간되었는데, 탐조 4년 차인 뱁새가 황새 박사님을 따라가자니 가랑이가 찢어질 게 뻔하다. 더군다나 두 번째 단행본은 사진도 넣지 않을 예정이고, 산문집 분량을 써내는 중으로 이미 감성의 차선을 탔으니 탐조지를 추천한다거나, 뒤따르는 정보를 해설하는 건 내 계획에 여지로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사의 맛> 생각은 내내 가시지 않았다. 가벼운 미니북 형태나 부록으로 추가하면 괜찮지 않을까. 말장난스러운 어감 역시 매력이다. 새참이란 본디 촌에서 농사일 중간에 먹던 간식 개념이므로, 끼니와 끼니 사이를 뜻하지만 탐조와 탐조 사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참. 중의적인 의미까지 고루 갖췄으니 스스로와의 타협은 다 된 거다.
요컨대 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승-전-결은 반드시 산해진미를 약속하며, 대한의 탐조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시대와 함께 변하긴 했으나, 삶에서 생리적 혹은 사회적 불편함을 초래하는 위험을 막기 위해 생활 기본 요소를 무려 의, 식, 주로 정의한 호모사피엔스가 아닌가. 수긍할 수 없다면 반증해 보자. 탐조지에서 새를 만나는 거대한 여정 속에 먹는 것이 포함되지 아니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언제까지 탐조 후엔 닭이라는 공식만 따르며 치킨을 먹을 텐가! 광릉숲 인근에는 무려 버터에 튀긴 모닝빵을 함께 주는 돈가스 집이 있고, 비빔국수 한 그릇은 1.5인분 기준으로 나온다.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가 유영하는 김치찌개와 달큰한 간장 불백이 기억을 끊기게 만드는 영종도, 솥그릇까지 먹어치울 기세로 만드는 간월도 굴밥, 캐논이 사준 (메뉴에도 없던) 회덮밥과, 살이 꽉 찬 대합 조개탕, 밥심이 떨어질 때 즈음 넣어준 저녁, 뜨끈한 갈비탕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 겉절이 조합을! 나에게는 이것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이제 <새참: 탐조의 맛>을 전한다. <출사의 맛> 브런치북 소개단에서 표현했듯, 맛을 더해 줄 식당 정보는 이번 주말 탐조를 계획 중인 당신을 위한 덤이다.
맙소사! 이거구나?
매주 화요일 발행
야생 조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탐조(探鳥). 나 마실 물은 못 챙겨도 쌍안경은 반드시 챙겨야 하는 탐조인 들은 타지에서 늘 배가 고프다. 그러나 더 이상 공릉천 논가에서 뜸부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이따 뭐 먹을래?”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새를 만나는 거대한 여정 속에, 밥 숟가락을 더할 맛은 반드시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