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경 Apr 25. 2022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나의 반려동물 해달이에게

해달군,


넌 어떤 존재이기에 이처럼 큰 울림을 주는걸까, 이유를 생각해봤어.

어디서 봤는데, ‘웃겨 정말’이라고 생각하면 호감이 시작되는거래.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난 해달군이 특이해서 좋아. 특별하다고 해야하나?

난 네가 사람처럼 식탁의자에 올라와서 앉아있는 게 웃겨. 가족으로서의 위치를 당당하게 뽐내는 것 같기도 하고.

매일의 기분에 따라서 산책 코스를 멋대로 바꾸는 것도 그래. 넌 강아지이면서 무슨 컨디션과 선호가 매일 달라지는건지..

해달군은 사람을 가리지? 나랑 엘리베이터 타면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엄마나 언니랑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안아달라고 보채잖아. 더 어른같은 보호자한테는 응석이 많아지는 걸 나도 다 알아.

또 해달군은 가족들이 집 안에서 각자 방에 있으면 누가 어디에 있는지 꼭 다 확인을 해야 성미가 풀리지. 너는 우리 보호를 받는 존재면서 왜 행동대장처럼 행동하는거야.

그런 작은 부분 하나까지 넌 다 특별하고, 웃겨.

실은 너는 내 첫번째 강아지 동생이니까 모든 게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넌 언제나 똑같아서 좋아.

모든 게 가변적이면서도 또 불안정함을 자주 느끼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 나에게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다가와. 어떻게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그러면서 내 자신조차도 경사진 곳에 놓인 체중계처럼 자꾸 왔다갔다해서, 같은 음식을 먹거나 같은 말을 듣는다고 늘 동일한 기쁨을 느끼지는 않지. 그런데 넌 언제나 똑같은 행동을 하고, 동일한 기쁨을 줘.

외출하고 돌아오면 해달군은 늘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기다리잖아. 외출시간이 30분이 되었든, 5시간이 되었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늘 똑같이 달려와. 그래서 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느린 것 같아서 자주 조급해져.

내가 침대에 누우면 해달군 전용 계단을 뛰어올라와서 종아리 옆에 몸을 웅크리고, 살을 맞대고 쉬거나 잠을 청해.

네가 예상한 행동이나 말이 아니면 한 쪽 발을 들고 고개를 갸웃하지? 그 모습이 왜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처로운지.

그리고 오전이든 저녁이든, 날씨가 어떻든 ‘산책가자!’라고 하는 내 억양과 목소리는 변함없이 널 기쁘게 한다는 걸 난 알아. 늘 같은 말투로, 같은 말을 해도 한결같이 좋아해주는 네 모습.

해달군의 뻔하고 예상되는 모습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를 얼마나 붙잡아주는지…


쓰고 보니 모든 점이 좋다는 말이 되었네.

나의 이런 생각과 마음을 너는 평생 몰라도 돼.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특이하면서도 뻔한 해달이로 오래오래 남아있어줘.

  내려가서 실컷 놀아줄게, 누나 까먹지 말고 있어.



산책가기 전 꼬리가 흔들리는 해달이


작가의 이전글 권력의 망에 갇힌 고래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