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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Nov 14. 2021

이상하고 맘상하고

행복해져라

지난 금요일, 그날 하루는 정말 정말 이상했다.


1교시 수업을 즐겁게 마치고, 2교시 영양 수업을 위해 교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떠나려던 찰나, 준우(가명)가 복도를 격렬하게 가리키며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복도에 야단이 났어요!"

요즘, 준우는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부르기에

"먼저 준우가 친구들에게 얘기해봤니?" 하고 물었다.


"아니요! 제가 어떻게든 해보려 했는데, 더 심각해졌어요!"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하는 수 없이 다툼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쉽게 부딪히고 싸워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오해만이 화를 불러일으킨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가 가장 까다롭다.


심지어 멱살잡이가 일어난 조훈(가명)이와 민재(가명)는 다른 친구와 다툼이 일어난 것을 중재하려다 이상하게 둘이 붙어버렸다. 서로 사과하기도 애매한 상황. 그냥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주고 영양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뒤 황급히 연구실로 내려갔다.


무능한 나로 인해 다른 선생님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일을 하고 있는데, 눈 몇 번 감으니 2교시가 끝나버렸다.


2교시가 끝나자마자 반 아이들 몇 명이 연구실로 내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 반에 다온(가명)이랑 하준(가명)이랑 또 몇 명이 영양 선생님께 잔뜩 혼났어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 왜 이렇게 민감한 걸까. 그걸 알려주려 연구실까지 부랴부랴 내려오다니.

다음부터는 안 알려줘도 괜찮다고 했더니 그로 인해 자기들까지 혼이 나서 억울하단다.


역시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한 원석 상태다. 결국 또 반에 가자마자 고자질을 당한(?)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알림장을 쓰는 시간에 사단이 났다.


그날은 알림장을 쓰면 아이들이 학급 보상으로 모은 사탕을 나눠주는 특별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더더욱 열심히 예쁜 글씨로 쓰고, 도장도 받고, 사탕도 한아름 받아갔다.

그런데, 글씨를 유난히 날려쓰는 정민(가명)이가 평소보다 더 화려하게 쓰다 만 알림장을 내게 들고 왔다.


"정민아~ 더 열심히 쓸 수 있지? 좀 더 또박또박 써보자~"

"네에~"

나는 정민이가 장난스레 대답하면서도 충분히 예쁘게 쓸 수 있는 아이기에 확신을 가지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정민이는 내 믿음을 배반하고 말았다. 오히려 더 날려써서 들고 온 것이다.

"정민아? 무슨 글잔지 하나도 못 알아보겠다. 다시 써와~" 아까보다 더 입술을 깨물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3번째로 써 온 정민이는 여전히 아까와 똑같은 글씨체로 적어왔다.

조금 화가 났던 나는,

"정민아, 너 일부러 대충 쓰는 거지?" 하고 대뜸 물었다.

"네에~" 정민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건 선생님이 인정해줄 수가 없네. 조금의 성의라도 보여줘야지. 다시 써오세요."

솔직히 정말 정말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정민이도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하면서 "아, 그냥 앞으로 알림장 안 쓸래요." 그렇게 알림장을 책상에 툭툭 치면서 자리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열심히 써 오는 다른 친구들을 봐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정민이는 놀랍게도 알림장을 4번째로 다시 써 왔다.

친구들 손에 가득 쥐어진 사탕을 포기하긴 힘들었겠지.

정민이의 글씨에 아주 약간의 성의가 보이자, 힘겹게 도장을 찍어줬다. 그러자 정민이는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했다.


알림장을 도로 받자마자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정민이의 행동은 선을 넘었고,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당장 정민이에게 달려가,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금 반항하는 거니? 선생님이랑 싸우자는 거야?" 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가슴에 돌멩이가 박힌 것처럼 스라리고 아팠다. 울컥하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화를 냈다.


그 와중에, 또 일이 터졌다. 이번엔 준영(가명)이가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 자리에서 오열을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아이들을 먼저 급식소로 보내고, 먼저 정민이와 이야기를 했다.


정민이는 내가 계속 혼을 내자,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아이가 알아들을 때까지 훈계를 했고, 정민이는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나도 열심히 째려보았는데, 정말 속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오늘은 급식을 걸러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영양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결국 미각을 상실한 채로 밥을 먹고, 마치 돌을 씹는 기분으로 음식물을 삼킨 뒤 반으로 올라갔다.


반으로 올라가자, 역시 아이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흔들리는 이빨을 뽑겠다며 손으로 막 흔들고 있었다.

"예슬아! 이빨을 손으로 뽑으면 안 되지! 얼른 치과가게 가방 싸자"

"아니요. 제가 뽑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저희 엄마도 손으로 이빨 뽑아주세요."

"뭐? 그래도 치과에서 뽑아야 이가 이쁘게 자라나지."

"아니에요. 저번에 치과에서 뽑았던 자리에 이가 이상하게 났어요."

"에휴, 그럼 엄마한테 한번 전화해보고 일단 집으로 가자"

"알겠어요. 뚜뚜뚜.. 어 엄마! 나 이빨이 흔들려서 그러는데, 치과 가야 할 것 같아~ 어? 그냥 뽑으라고? 알겠어!

선생님~ 엄마가 스스로 뽑으라고 하시는데요? 선생님은 너무 걱정이 많아요."


그 얘기를 듣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ㅎㅎㅎ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돌이켜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난주 금요일, 정말 아이들에게 이상한 바이러스라도 퍼진 것인지, 하루 종일 이상한 일만 벌어졌다. 그 와중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도 많이 생겼다. 나 역시 마음에 멍이 든 것처럼, 기분도 퍽 상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별일도 별일이 아니게 느껴지고, 갑갑함보단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들이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유가 이거구나. 별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면 정신력으로, 혹은 무언가 열중할 다른 것으로, 그것도 안되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술을 택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술에 의존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저녁상에 왜 항상 소주병이 올라와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야, 다시 직장에 돌아가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고, 실은 기억에서 일정 부분 사라져 해맑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으니까. 나 역시 그저 친구들과 웃으면서, 월요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하고 지나갈 뿐이다. 조금 씁쓸한 깨달음이었지만, 그냥 웃기로 했다. 적어도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교사가 몸소 긍정의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월요일이 다가오자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단순하긴 해도 힘이 될 것이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노래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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