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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Jan 03. 2022

우리집 습작의 고수를 만나다

1년 전, 창고를 정리하다 포스트잇 뭉탱이(?)를 발견했다. 아니, 이게 뭐람?

정체는 맥락없는 글귀였다. 글씨는 너무 반듯했고, 내용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쓴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범인은 나 아니면 동생인데.. 아무래도 나는 이런 글을 쓴 기억이 없다. 동생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이렇게 글씨체가 좋았던 적이 없다더라. 표현이 너무 참신해서, 나의 필력으로는 나올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냥 동생이 기억을 상실한 것 같다.

그 당시 왠지 나중에는 이 뭉탱이를 버리게 될 것 같아 황급히 파일에 적어 놓았고, 오늘 다시금 발견했다.


바다를 걷기 위해선 누군가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이 바다라면
'가족'은 '해와 달'
'세파'는 '파도'
'나'는 '개척자'
'우정'은 '물결'
사랑하는 사람은 '별'이 되리라
그럼 나는 그대의 '별자리'가 되어 주리.


행복했던 과거가 많은 만큼 괴로웠던 과거도 많다.
좋은 것만 찾으려고 하면 지금 시점에서 뭘 찾아야 할지 헤맨다.


내 방 책상에 앉아 PIXAR 모양 전구 아래에서 흑연을 들고 가공된 얇은 나무 위에다가 문지르다 보면 어느샌가 '현·타'가 온다.


운동할 때마다 근육의 땡김을 느낀다. 그 느낌을 유지하면 기분이 묘하다. 아주 열정적으로 뛰고 난 뒤, 숨을 헐떡이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폐에 있는 산소를 한번 재정비하고 나서 그런지 노래가 잘 불러진다.


수학문제를 풀 땐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면 속수무책이다.


속삭임
: 전투력을 저하시킴. 둘 이상 있을 때 가능.
서로의 마음에 지문을 남김.
속삭임에 들어간 두 개의 'ㅅ'은 귓속으로 들어가 내면을 간지럽힘.


아름다운 것을 그린 그림이나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은 소중하다.
어떤 배경이 주어지든 건들여선 안될 것 같은, 모든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 느껴질 때도 가끔 있다.


이렇게 쓴 글을 보니, 진정한 글쟁이는 동생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속삭임을 표현한 글에서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략 중1때 쓴 글 같은데, 역시 그 시절 감성은 그때만 나오는 것 같다. 지금 동생의 글솜씨를 보니, 우리반(3학년)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여하튼 과거의 동생 덕분에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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