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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pr 29. 2021

비는 곧 그칠 거니까

영국 브라이튼 | 오후의 홍차

런던 히드로 공항에 마중 나온 J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런던에서 만나다니!” 


같은 팀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퇴사하고, 영국 유학을 준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J는 이미  런던 생활자가 되어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열었다. 그녀를 위해 떠나기 전날 슈퍼마켓에서 산 순대가 공항 검색대를 잘 통과해서 다행이었다. 꽁꽁 싼 순대, 김밥세트, 떡볶이 떡 등 구호물품을 냉장고와 찬장에 차곡차곡 넣었다. 집세가 비싼 런던에서 그녀는 응접실로 쓰이는 공간을 본인이 사용하고, 나머지 두 방은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을 구하여 함께 지낸다고 했다. 원래 응접실이었던 그녀의 방은 다른 방보다 넓은 대신 조금 추웠지만, 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뷰는 시원했다. 집안을 돌아보다가 현관 앞 장 아래 테이프를 단단히 붙여둔 게 보였다. 


“지난번에 쥐가 나온 거야. 엄청 놀라서 집주인에게 연락했지!” 

“쥐? 찍찍... 진짜 쥐?” 


집주인은 ‘아, 그랬구나.’라며 덤덤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런던에서 유학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나 집에서 쥐 목격담을 종종 듣곤 했다. 역사가 오래된 이 도시에선 쥐는 함께 지내는 친구(?) 같은 걸까. 런던에 머무는 내내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오후쯤 시내를 산책했다. 그녀는 요일에 따라 열리는 재래시장, 벼룩시장의 정보를 알고 있는 ‘런던 사람’이었다. 대학원에서 했던 프로젝트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대견하고, 기특해서 내 마음에도 씩씩한 기운이 전해졌다. 우리는 여의도 공원을 걷듯 커피를 들고 천천히 런던의 하이드 파크를 걸었다. 꼭 가고 싶은 곳은 딱히 없었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그녀와 런던에서 순대볶음을 해서 먹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첫날 이뤄졌으니까. 


늦가을의 브라이튼 Brighton, England


휴가의 끝이 가까울 무렵,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었다. 작은 도시락에 김밥을 담아,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걸리는 브라이튼에 도착했다. 여름이면 신나게 움직였을 대관람차는 멈춰 있었고, 싸늘한 바닷바람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적한 바다를 보며 벤치에 앉아 먹는 김밥은 맛있었다.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거센 바람에 우산을 펼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며칠간 런던의 날씨로 예측하기에, 이 비는 곧 지나갈 거 같았다. 



“언니, 비는 곧 그칠 거니까, 잠시 카페로 들어가자.” 

“좋아. 따뜻한 차 마시면 좋을 거 같아.” 



빗방울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갔다. 애플파이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시켰다. 찻잎과 뜨거운 물이 담긴 갈색의 도자기 주전자, 작은 사각형의 각설탕 그릇, 우유가 담긴 서버, 민트색 찻잔이 탁자에 놓였다. 함께 준 스테인리스 차 거름망을 찻잔에 올리고 차를 부었다. 따뜻한 물에 노곤해진 찻잎들이 사뿐히 거름망에 쌓였다. 향긋하고 따스한 기운에 몸과 마음을 녹인다. 창 밖을 보니 보슬비가 내려도, 영국인들은 뛰지 않았다. 후드티의 모자를 눌러쓰고 천천히 걸을 뿐. 비를 머금은 큰 구름이 지나고 있었다. 어두웠던 밖이 조금씩 밝아진다.    


Brighton, England _ 오후의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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