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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pr 19. 2021

짝꿍이된다는 건

스페인 바르셀로나 | 추로스

결혼 후 바로 모스크바로 왔기에, 우리의 진짜 신혼여행은 겨울의 스페인이었다. 특히 수도 바르셀로나는 그도 나도 꼭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비행기로 4시간 반,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두터운 패딩 대신 코트를 입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눈길이 아닌 바닥이 훤히 드러난 길을 걸으니 좋다.” 

“예쁜 구두 가져오길 잘했네.” 


겨울 내내 장화를 벗지 못했던 발은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검은색 단화를 신었다. 가벼워진 발만큼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거리를 걸었다.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를 놓치지 않기 위해, 크로스백을 걸고 그 위로 코트를 단단히 걸쳤다. 모스크바에 비하면 이 곳의 겨울 거리는 따스했다. 다음 날 새벽, 미리 신청해 둔 가우디 투어를 위해 택시를 타고 구엘공원에 도착했다.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우디와 구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공원을 오를 때쯤 붉은 해가 모습을 보였다. 


“여러분, 참 아름답죠. 구엘이라는 후원자가 없었다면, 가우디도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구엘공원에서 보는 일출 


가이드는 우리가 지금 이 모든 걸 볼 수 있는 건,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준 구엘이라는 후원자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떤 이의 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좋은 점을 봐주는 한 사람, 본인 스스로 의심하는 때에도 그를 믿어주는 한 사람, 부부가 된 그와 내가, 서로에게 그런 한 사람, 짝꿍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우리의 결혼 서약처럼 매일 사랑을 심는 하루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이어폰을 꽂고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그와 나는 바르셀로나 거리를 거닐었다. 오래전 가우디와 구엘을 떠올리면서, 모른 채 걸었다면 지나쳤을 건축물, 바닥의 표시, 골목의 풍경이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오래된 추로스 집을 알려주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추로스를 정말 좋아해요. 이 집이 꽤 유명하니 먹고 갈까요.” 


가이드의 제안에 모두 수긍하며 줄을 섰다. 1968년부터 라고 쓰인 걸 보니 50년이 넘었다. 내 앞에서 이미 만들어진 추로스가 똑 떨어졌다. 새로 나올 추로스를 기다리며, 하얀 요리복을 입고 추로스를 만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살폈다. 기계를 돌리며 나오는 반죽을 떼어내고, 기름에 추로스가 골고루 튀겨지도록 손을 움직이는 그의 동작에서 절도 있는 리듬감이 느껴졌다. 


“갓 구워진 거라 더 맛있을 거 같아.” 

“설탕 뿌려달라고 하자.” 


남편과 나는 설탕이 살짝 묻은 추로스와 초코시럽 세트를 받았다. 팔짱을 끼고 나의 한 손엔 초코시럽이 담긴 컵을, 그의 손엔 추로스 봉지를 들었다. 우리는 계속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손을 내밀며 추로스를 초코시럽에 찍어 먹었다. 추로스와 초코시럽은 짝꿍처럼 맛이 잘 어울렸다. 별이 많이 붙은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거리의 추로스 하나, 이끌리는 대로 맛보는 커피 한 잔에 웃을 수 있는 이와 만나서 다행이다. 둘이 걸어갈 또 다른 길의 시작, 우리의 첫출발이 마음에 쏙 든다. 


Barcelona, Spain _ 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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