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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13. 2021

행복의 비밀을 아는 파이

덴마크 코펜하겐 | 미국식 파이

결혼 일 주년이 되던 여름,  그가 말했다.


“여름휴가를 받았어! 어디든 다녀오자!”

“휴가 이후 긴 출장 가려면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

“이런 기회가 또 없지. 가고 싶은 데 없어?”


쉽게 찾아오지 않는 휴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세계지도를 꼼꼼히 살폈다.   가보지 않은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정했다. 여름의 휴가,  그것도 북유럽이라니! 얇은 티셔츠, 원피스를 챙긴 가벼운 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러시아가 아니라면, 함께하는 여행의 일정은 내가 맡는다. 그는  욕심이 없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할 , 그에 비해 나는 보고 싶고, 먹고 싶은  많다. 다툴 일이 없는 최고의 여행 짝꿍이다.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고, 겨울이  낯선 러시아에서 사계절을 무사히 버틸  있었던 , 언제나  속내를 들어준 그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튼튼한 마음을 가진 그는 나의 바위였고, 감정의 파도를 타는 나는 변화무쌍 불가사리로 그에게  붙어 안온함을 느꼈다.


7월의 덴마크의 햇빛은 적당히 뜨거웠다. 여름에 결혼한 우리는 일 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입은 셔츠와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모스크바와 달리 아기자기한 골목, 작은 샵들, 예쁜 소품들이 가득한 가게를 구경했다. 햄버거를 사서 공원에 앉아 그늘 아래 쉬고, 최초의 놀이공원 티볼리에서 함께 하나도 무섭지 않은 청룡열차도 탔다. 기차를 타고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현대미술작품도 관람했다. 3박 4일은 금세 흘렀다. 여행의 마지막 날,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작은 파이집에 들렀다. 이미 구글로 사전조사를 끝낸 나는 그에게 말했다.


“현지인들 사이 꽤 유명한 집 이래.”

“신기한 파이들이 많네.”

“응, 미국식 파이야. 덴마크 남자랑 결혼해서 이 곳에 살면서 만들기 시작했대.”


나는 가게에서 판매 중인 레시피 책을 들춰 보았다. 고국을 떠나 결혼과 함께 덴마크에 살게 된 여인, 엄마가 구워준 파이의 맛, 고향이 그리워서 굽기 시작한 그녀의 파이는 코펜하겐의 명소가 됐다. 나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진열장에는 커스터드 크림으로 채운 파이, 싱싱한 과일을 올린 타르트,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파이도 보였다. 몇 조각 남지 않은 파이는 인기가 많은 게 틀림없다. 우리는 그 시즌에만 판다는 파이 두 조각을 골랐다. 감자와 채소가 들어간 파이와 레몬 커드 파이였다. 접시에 담아 자리로 와서 포크로 콕 찍어 맛을 본 순간, 서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세상에 이런 맛이!”

“와. 이건 진짜 행복한 맛이야.”


코펜하겐의 서점에서 읽었던 ‘휘게’에 대한 책의 문구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인들의 삶의 방식- 휘게 Hygge. 그들이 말하는 행복의 비밀은 “지금 이 순간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달콤한 것을 소중한 이와 함께 하는 것”이다. 소중한 그와 함께 따뜻한 오후, 달콤한 파이를 입에 넣은 그 순간 나는 그들이 숨겨둔 행복의 비밀을 찾았다.


Copenhagen, Denmark _  행복의 맛, 미국식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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