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 토피피 초콜릿
이모는 독일 베를린에 산다. 한국 전쟁 이후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중반에 독일인과 결혼하며 해외로 떠난 그녀의 기억 속 고국은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였다. 어린 시절 내가 본 한국을 찾은 이모의 모습은, 작고 왜소한 그녀의 몸집보다 크고 무거운 가방을 늘 우리 앞에 끌고 왔다. 엄마는 말했다.
“언니, 무겁게 뭘 이리 많이 챙겨 왔어.”
“조카들 주려고 이것저것 싸왔어.”
큰 가방을 열면 사촌 언니, 오빠가 자라서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 신발 등이 한가득이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색다른 디자인, 색감의 옷은 우리 눈에도 예뻤다. 동생과 나는 자주 냄새를 킁킁 맡았다.
“독일 냄새다.”
“엇, 여기 초콜릿도 있어! 이모 초콜릿!”
지금 생각하면 섬유유연제 향이라 생각되는 이국적 냄새가 나는 옷 가지들 사이, 이모가 비행길 내내 부서지지 않도록 고이 감춰둔 초콜릿이 나왔다. 네모난 상자에 동전처럼 든 그 초콜릿을 우리는 ‘이모 초콜릿’이라 불렀다. 그녀의 한국 방문엔 늘 빠지지 않는 <토피피 초콜릿>. 한 알을 꺼내면 캐러멜이 아래를 감싸고 있다. 작은 입 안에 꽉 차던 초콜릿의 캐러멜이 녹으면 딱딱한 견과류가 느껴졌다. 땅콩인지, 호두인지, 그 당시엔 알 수없던 정체는 헤이즐넛이었다. 처음 맛보는 부드럽고 고소한 헤이즐넛이 초콜릿, 캐러멜과 어찌나 어울리던지, 초콜릿 상자를 냉동실에 넣고 한 알씩 아껴 먹었다.
첫 유럽 여행에 베를린을 넣은 건 이모 때문이었다. 이번엔 내가 이모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엄마가 준 고춧가루, 김, 라면 등을 빽빽하게 채웠다. 어린 시절 이모처럼 큰 가방을 끌고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이모와 이모부가 보였다.
“이제 어른이 다 되었네. 널 여기서 만나니까 너무 좋다.”
동네를 산책하고 함께 장을 보러 슈퍼에 들렀다. 매대에서 어린 시절 이모가 사다 준 토피피 초콜릿을 발견했다.
“이모, 이거 우리 집에선 ‘이모 초콜릿’으로 통해요.”
“맞아. 그땐 꼭 챙겼지. 여기 살면서 저 초콜릿이 제일 맛있었거든.”
베를린의 슈퍼에서 이모와 그 초콜릿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오래전, 한국행 티켓을 끊고 설레 하던 그녀를, 본인이 먹고 입던 것 중 좋은 걸로만 가방을 차곡차곡 채웠을 그때의 이모를 상상했다. 나는 이모 몰래, 매대에 진열된 <토피피 초콜릿> 한 상자를 손에 들었다. 이번엔 내가 이 초콜릿을 사야지. 오늘 밤 이모, 이모부와 함께 아끼지 않고 모두 나눠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