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스 | 줄기콩
비바람을 뚫고 걸었던 파리와 달리 니스는 시종일관 따뜻한 햇살이 반짝였다. 샤갈 미술관에서 찬란한 색채를 가진 그의 그림까지 보고 나니 마음 가득 밝은 기운이 차올랐다. 가벼운 걸음으로 에어비앤비 주인이 추천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식당 안까지 들어온 비둘기 떼를 피해 한쪽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폈다.
“한국에서 왔어요?”
“네. 서울, 한국인이에요.”
“오, 저는 삼성을 좋아해요.”
나란히 옆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던 그는 자신의 갤럭시 폰을 나에게 흔들었다. 그를 향해 내 아이폰을 흔들었다. “아, 미안해요. 저는 애플을 좋아해요.” 그는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빙그레 웃었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던 그는 스트라스부르크에 살고 있으며, 니스에 출장을 왔다고 했다. 메뉴를 고민하던 내게 그는 칠판에 적혀있던 ‘오늘의 점심- 관자요리’를 추천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가본 적 있어요?”
“아니오. 그런데 친한 친구가 한국의 아이를 입양했어요.”
그는 친구가 입양한 아이를 보며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당시 내게 해외입양에 대한 인상은 방송에서 본 슬픔, 차별, 정체성의 혼란 또는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로 단편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본 건 달랐다.
“네가 본 건 내가 알 수 없는 어두운 면일 수도 있겠다.”
“응. 나는 한국인으로 다른 나라로 떠난 이들을 생각했으니까. 그럴지도 몰라.”
“나에게 그 아이는 친구의 사랑스러운 딸, 내 딸의 좋은 친구지. 밝고 총명한 아이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이를 상상했다. 어떤 사람이든 한 가지 색으로 칠할 수 도 규정지어서도 안 되는 입체적인 삶이다. 스스로가 만든 망원경 안에서 그들을 관찰했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
홀로 나란히 앉은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잘 구워진 도톰한 관자, 그린빈이라 불리는 줄기 콩이 가지런히 놓였다. 프랑스에서 처음 맛본 줄기콩은 처음 느껴보는 식감이었다. 콩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삭하고 담백한 맛에 반했다. 반가운 듯 포크로 줄기콩부터 찍는 걸 보고 그가 말했다.
“줄기콩 좋아해? 프랑스에선 이유식에 꼭 들어가는 재료야.”
올리브 오일과 소금에 볶은 담백한 줄기콩을 먹으며, 이곳에 와서 이유식을 시작했을 내가 알지 못하는 한국에서 온 이들을 생각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프랑스에서 유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 만난 적 없는 이들의 인생을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었다. 지금 어느 곳에 있든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인생. 자신의 삶을 오롯이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