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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28. 2022

아이들의 이유식

르완다 | 콩

이른 새벽 빗질을 하는 이의 소리에 일찍 눈을 떴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 동아프리카 우간다와 케냐 사이에 있는 이 작은 나라는 한국의 경상도 크기 정도 된다. 한없이 평화롭고, 환한 미소를 보이는 이들을 보며 불과 20여 년도 안된 1994년에 제노사이드(대학살)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천 개의 언덕이라 불릴 정도로 언덕과 산이 많은 나라, 한국에서 파견 중이던 동료를 따라 사업장으로 출발했다. 굽이치는 언덕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고. 초록의 수풀이 가득한 숲길을 통과하며 정신이 아찔하고 멀미가 났다. 가로등 하나 없는 울퉁불퉁한 길은 밤엔 위험할 터였다. 수도에서 지내는 가족들을 보기 위해 주말이면 이 길을 오간다는 동료가 걱정이 됐다.      


“지나가다 보면 차가 언덕 아래 떨어진 것도 많이 보지.”

“진짜 조심히 다녀야겠어요. 길이 너무 험하다.”

“그래야지. 아, 저 사람 보여? 저게 마토케야.”      


동료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우리의 차를 피해 잠시 길가에 멈춘 이의 손엔 마토케(르완다 사람들이 농업에서 사용하는 낫)가 들려 있었다.      


“제노사이드 때는 저 마토케로 서로를 죽였다던데, 그 생각을 하면 섬뜩하곤 해.”      


영화 <호텔 르완다, 2004>는 가장 잔혹한 대학살 중 하나인 르완다 사태, 1994년 제노사이드에 대한 이야기다. 100일간 1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이때, 생업을 위한 도구는 순식간에 서로를 향한 살인 무기로 변했다. 대학살을 겪은 이들은 또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고, 마을 곳곳에 제노사이드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아프리카 나라 중 치안이 나은 편인 건 그 때문일까. 큰 상처를 안은 이들은 여전히 현재도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함께 간 기자와 함께 제노사이드의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생김새에 따라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누어 살기 위해 마토케를 든 이, 자신의 남편과 아이를 죽인 이는 며칠 전까지 음식을 나누던 이웃사촌이었다.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새 가정을 꾸리고,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수도 키갈리에서 3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함께 이유식을 만든다. 마토케는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체소를 수확하고 손질하는 데 쓴다. 각자 재배한 감자, 시금치, 콩, 토마토 등 다양한 식재료가 이유식이 된다. 아프리카에서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영양실조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역주민들 안에 있었다. 르완다의 붉은 콩이 눈에 띈다. 고기가 흔치 않은 곳에서 콩은 좋은 단백질이 된다. 이유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어머니들의 마음은 어떨까. 내 아이들이 르완다는 다시는 이웃이 적이 되지 않는 나라, 서로 믿고 의지하며 나누는 평화로운 마을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거다.           


Rwanda _ 아이들의 이유식에 빠지지 않는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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