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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16. 2021

같은 마음으로 먹는 식사  

우간다 | 양배추 볶음


도저히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웅덩이를 통과하며 차는 덜컹거렸다.


“아프리카 마사지야.”


앞좌석에 앉은 케네스가 뒤에 앉은 우리를 보며 웃었다. 일반 승용차론 몇 번을 빠졌을 길, 우리가 탄 차는 가뿐히 그 길을 지났다. 아프리카 우간다 사업장의 차는 대부분 랜드크루저 종류였다. 비포장 도로가 태반이고, 찾아가는 아이들의 집은 마을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곳곳이 패인 붉은 흙길, 작은 웅덩이를 건너는 길 내내 창문 위 손잡이를 꼭 잡았다.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케네스에겐 익숙한 길이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오는 방송을 봤다. 정말 저럴까 싶었던 비현실적 모습은 국제구호개발기구 직원이 되어보니, 모두 지금, 오늘의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찾고, 방송국 PD 들과 집을 방문해 꼬박 3일간 모든 일상을 담는다. 때론 영상에 욕심을 내는 PD의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게 현장과 제작진 사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다.


대부분의 촬영은 아침 일찍 시작한다. 숙소와 아이의 집은 멀지 않아도, 가는 길이 험난해 보통 1시간이 걸렸다. 새벽 6시, 벌겋게 눈이 충혈된 케네스는 이미 사무실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제 촬영이 마친 후에도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밀린 일을 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케네스, 좋은 아침이야. 잘 잤어?”

“응, 너희도 잘 잤니. 아. 잠시만.”


차에 타려던 그가 잊은 게 있는지 서둘러 사무실에서 텀블러를 챙겼다. ‘My Tea! 홍차를 깜박했어’ 그리고 차에 올라탄 그는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이름은 ‘케네스 해피’였다. 며칠간의 강행군에 힘들 텐데 성심성의껏 도와준 그 덕분에 촬영은 순조로웠다. ‘해피 happy’라는 그의 성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면 거리에 조명 하나 없는 이 마을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아침 일찍 촬영을 시작하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해지기 전 더 많은 영상을 담기 위해, 해가 떠 있을 동안 최대한 많은 장면을 찍은 후 우리는 잠시 사무실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우간다의 수도와 달리 이 마을엔 식당이 없다. 사무실엔 직원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이가 따로 있었다. 흩날리는 쌀, 삶은 콩과 감자, 양배추 볶음으로 이뤄진 단출한 식사다. 샐러드가 아닌 기름에 볶은 양배추 채를 접시에 담았다. 짭조름한 소금 간, 기름, 양배추. 딱 3가지로 한 요리인데 감칠맛이 났다.


“맛있다. 양배추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자꾸자꾸 손이 가요.”


같이 간 동료와 나는 수줍어하며, 양배추 볶음을 좀 더 접시에 담았다. 촬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배고픔을 잊었다. 아이들의 쓸쓸한 식사 모습을 보면, 나의 일시적인 허기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양배추는 달고 짭조름하며 맛있었다. 양배추 한 덩이를 사서 다 먹어본 적이 있었나? 다양한 음식을 고를 수 있는 한국에서 양배추 볶음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큰 접시에 놓인 양배추 볶음을 나누며, 함께 앉은 이들의 얼굴을 본다. 아마 지금 우리의 마음은 같을 거다. 오늘 카메라에 담긴 아이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그래서 더 많은 아이들의 배고픔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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