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 우갈리
"해가 지면 절대 밖에 혼자 다니지 마세요. 밤의 거리는 나이로버리(Nairobi+Robbery) 입니다"
나이로비의 숙소에 도착한 첫날, 케냐 사무소의 직원은 우리에게 이곳에서 지켜야 할 안전교육을 설명하며 신신당부했다. 특히 길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지 말 것, 중요한 소지품은 몸에 꼭 지참하라고 했다. 강도 도난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나이로비는 나이로비+강도를 합친, 나이로버리라고 불렸다.
아프리카 출장에서 가장 많이 경유하는 곳, 케냐의 출장이지만 늘 위험과 안전에 대한 경고를 받기 때문에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 출장은 케냐의 식량사업을 진행하는 걸 보기로 했기에, 다음 날 사업장까지 차로 이동했다.
동아프리카의 가뭄은 이어지고 있었다. 입사한 이듬해 기후변화로 인한 동아프리카 가뭄에 대한 모금을 진행한 적 있는데, 그 당시 사진으로 보던 갈라지고 메마른 땅들과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가 방문한 6월 중순은 가장 많이 비가 오는 시기를 지난 후였는데도, 올 해도 비는 많이 오지 않았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아픈 지구, 기후변화의 타격은 땅의 농산물을 수확하여 식량이 되는 그들의 삶과 밀접히 연결됐다. 한 집에서 우리는 현지어로 '가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유독 가뭄이 심한 해에 태어났다고 했다. 어머니를 도와 농작물 수확을 돕는 그를 따라, 옥수수 밭에 갔다. 넉넉한 비가 내려야 쑥쑥 자란다는 옥수수 밭은 마르고 건조했다. 텃밭 건너편 땅에는 나팔꽃을 닮은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이 피었다는 건 이 땅이 척박하다는 거예요. 쓸모없는 꽃이죠."
예쁜 꽃이지만 그들의 한 끼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케냐 사람들의 주식은 우갈리다. 끓는 물에 옥수수 가루를 저어서 만드는 우갈리, 언듯 보면 한국의 백설기를 닮았다. 한국사람들이 밥을 먹듯 이들은 우갈리 와 절임채소, 소스 등을 함께 먹는다. 처음 맛보았을 때 포슬포슬 해서 감자인가 싶어 무엇인지 물었을 때, 현지 직원이 옥수수로 만든 우갈리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가뭄으로 인하여 옥수수의 수확량이 줄었고, 우갈리의 가격도 폭등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뭄'이라고 불리는 청년, 또래에 비하여 왜소했던 그의 모습에 마음이 쓰여서, 여전히 옥수수를 보면 우갈리가 생각나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곳에도 비가 오려나 궁금하고, 그때 만난 그 사람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