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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06. 2021

한 번뿐인 인연을 위하여

에티오피아 | 커피 세리머니

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됐다. 출장 전, 오리엔테이션을 해준 사업부서의 동료가 물었다.

“에티오피아는 처음이죠?”
“네. 아프리카 출장은 처음이에요.”
“첫 출장은 첫사랑과 같다고 말하는데, 에티오피아라니 평생 잊을 수 없을걸요.”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이들은 거긴 특별한 아프리카라고 했다. 유일하게 유럽 식민지배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한 나라, 역사적 자존심이 강한 그들은 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다. 최초로 커피를 발견한 그곳엔 세상에서 하나뿐인 ‘커피 세리머니’가 있단다. 단 어딜 가나 있는 벼룩은 조심하라고, 동료는 내게 벼룩이 싫어한다는 계피 조각을 챙겨 주었다.

계피 냄새를 폴폴 풍기며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도심 가득한 매연에 눈과 목이 따가웠다.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차창 밖으로 흙먼지 바람이 불었다. 왈캉달캉 달리는 차 안에서 온몸이 쑤시기 시작할 무렵 사업장에 도착했다. 현지 직원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하얀 전통 옷을 입은 여인은 초록색 잎사귀를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숯이 담긴 화로를 놓고, 투박한 쇳덩이 팬에 연둣빛의 생두를 좌르르 쏟았다. 그녀가 팬을 움직일 때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생두의 색과 향은 점점 짙어졌다. 어두운 갈색으로 볶아진 커피콩을 절구에 넣고 빻더니, 주둥이가 긴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여 곱게 갈린 커피가루를 넣고 한참 우렸다.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커피를 따랐다. 정성을 다하여 달인 한약처럼, 진한 색의 커피 한 잔을 받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에티오피아의 환영 인사 ‘커피 세리머니’였다. 


취재를 위해 현지 가정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마을에서 공부를 마치고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의 집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우리 앞에서 커피콩을 볶았다. 인터뷰하는 내내 집안 가득 진하고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커피를 마시면 또 커피를 따라주었다. 더는 안 주셔도 된다며 손사래 치자 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 마프라트(커피 세리머니)’라고 해요. 우린 서로의 일생에 한 번뿐인 인연일 수도 있으니까요. 상대방의 우애, 평화, 축복을 기원하며 하루 3잔 이상은 함께 마셔요.”

일생에 한 번뿐인 인연을 위한 커피, 그 말을 들으니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집을 돌며 이야기를 나눈 날엔, 받아서 마신 커피잔도 늘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캄캄한 산속의 숙소, 램프를 켜고 모기장 안에 피곤한 몸을 누워도 두 눈은 말똥말똥했다. 숙소 밖으로 나와 하늘을 봤다. 서울처럼 높은 건물이 없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보이는 별들이 까만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커피 한 잔에 담겨 받은 따스한 환대를 떠올렸다. 우린 또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더 맛있게 마실 걸, 더 행복한 표정으로 감탄할 걸, 뒤늦은 후회로 지새운 밤이었다.

Ethiopia_ 커피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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