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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30. 2022

맨발의 아이들

브라질 | 축구공 햄버거 

그날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위한 촬영을 지원하기 위해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로 가던 날 아침, 택시에서 세월호 뉴스를 들었다. 택시에 오른 우리에게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에게 일어난 믿지 못할 일을 택시 아저씨는 전해주었다.      


"학생들이 탄 배가 바다에 빠졌대요. 그래도 지금 구했다고 하네요." 

“아, 정말 다행이에요.”  

    

동료와 함께 안심하며 내린 택시, 잠시 후 그 뉴스는 오보였다는 걸 알았다. 수시로 올라오는 소식은 암담했다. 교복을 입은 학교의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렸다. 매일 믿지 못할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고 한국 전체가 슬픔으로 가득했던 그 해, 여름에 국내 아이들과 함께 브라질에 있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포함 볼리비아, 에콰도르, 아이티, 에티오피아, 독일, 호주 등 총 12개 나라의 아이들이 모였다. 아동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국제기구의 글로벌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모든 아이들은 꿈을 꾸고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다’      


전 세계 10대의 청소년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각자 본인의 나라에 대해 소개하고, 각 나라가 처한 아동들의 현실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각자가 처한 불평등, 가난, 착취, 폭력 속에서 아이들은 타협이 아닌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환경 속 아이들의 몫까지 다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이들을 보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학교폭력, 따돌림, 이 모든 걸 나는 몰랐던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페어플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 나라의 아이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욕하지 않아야 해요.” 

“절대 반칙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거예요.”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들 앞에 부끄러워진다. ‘사실 나는 실수가 두려워서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반칙도 하고 남 탓을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단다.’ 어른이 되면서 진정한 페어플레이의 의미를 잃어버린 선수가 되어, 내게 큰 피해가 오지 않으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오도카니 벤치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다. 다시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어른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였다. 거리, 공터에서 아이들은 모이면 공을 찼다. 둥근 축구공은 한 아이에서 저 아이에게로, 또 다른 아이에게로 열심히 굴러간다. 경기를 뛰는 아이들도 그 경기를 보는 아이들도 다 같이 즐겁고 함께 환호한다. 승자와 패자 없이, 성공과 실패가 아닌  아이들의 축구는 놀이 자체였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온 시내의 맥도널드, 축구공 모양의 햄버거를 만났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둔 시점의 기간 한정 햄버거였다. 어른인 우리의 얼굴에도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빵과 패티, 야채, 누구나 다 아는 맛의 햄버거지만 7개국 나라의 특색에 맞게 맛을 달리 한 햄버거다. 빵 모양이 축구공의 겉면을 닮았다. 한 사람당 하나의 축구공 햄버거가 어른인 우리 앞에 놓였다. 이 공을 먹으면 잊고 있던 페어플레이 정신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결심했다.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어른으로 살아가야겠다.


      

Brazil 2014  _ 브라질 월드컵 한정, 맥도널드 축구공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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