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은 친절하지 않다?

츤데레 러시아인

by 불가사리

남편과 결혼하며 처음으로 러시아어를 배웠다. 모스크바에 왔을 때, 알파벳을 쓸 수는 있었지만 영어 알파벳과 비슷하게 생긴 글자, 긴 단어를 완벽하게 읽어내는 것은 벅찼다. 택시를 타고 시내에 갈 때면, 길가의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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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로 이주한 첫해,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러시아인’이었다. 생활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든, 버스나 지하철이든 영어를 할 수 있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 원래 영어 안내 문구는 하나도 없었다니까...”

남편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르면서, 러시아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지하철에 영어 안내 문구도. 2018 월드컵을 준비하며 생겼다고 하니...) 러시아어를 못하는 나에게, 러시아인은 다가가기 어려운 준재였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 장소는 세상에 많다.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 가면, 현지어를 쓰고 영어로 통역을 하며 이를 또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이 허다하다. 서너 번의 통역을 거치는 건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지만, 우리 사이에는 ‘미소’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르다. 러시아인은 잘 웃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 있는 게, 활짝 웃는 것 하나인 내게 이 사실은 넘지 못할 장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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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바보라고 생각해.”
“모르는 사람이니까, 웃을 필요가 없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친절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의 나는, 러시아인들 앞에 자주 바보가 되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땐, 스스로 쑥스러워서 미소를 지었다. 화답의 미소는 없다. 나는 위축이 된다. 쏘아붙이듯 말하는 러시아어는 꼭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해가 지나고, 단어와 문장을 좀 더 편하게 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러시아인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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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나는 기온차가 느껴질 때가 괴롭다. 추운 거리에 있다가, 택시를 타면 꼭 재채기를 두어 번 하게 된다. 말없이 조용히 가던 택시 기사는, 내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꼭 이 말을 건넸다.

“붓즈다롭 (건강하세요.)”

메트로(지하철)를 타려고 출입문을 향해 걷는다. 앞에 먼저 통과한 사람이, 뒤에 오는 나를 위해 무거운 문을 잡아주었다. 이는 쇼핑몰과 같은 다른 건물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건물의 문들은 꽤 무겁다. 긴 겨울과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앞에 간 이가, 뒤따라 오는 이를 위해 문을 잡아준다.

“스파시바.(감사합니다.)”

유모차를 끈 엄마가 지하차도의 계단을 오르려고 하면,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다가가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들어서 함께 계단을 올랐다. 도움을 주는 이도, 도움을 받는 이도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런, 츤데레 러시아인들!


가족과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러시아인들


모스크바에 살면서, 나는 친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미소만 짓고 도움을 주지 않는 것과 미소를 보이지 않지만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 어떠한 것이 더 친절한 것일까. 말과 행동이 같이 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꼭 필요한 행동’ 이 친절의 언어일 수 있다. 또 하나, 나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친절하고 미소를 띤 여성’을 꾸준히 학습했다는 점이다. 표정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데, 내가 속한 학교와 직장에서 ‘여성으로서의 표정’을 강요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에서 나는 이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 입을 꾹 다문 나도 괜찮다. 미소 짓지 않는다고,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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