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자는 10년 전과 바뀐 게 없다

기자는 일하고, 덕후는 즐긴다 ; 방송국이 위기인 이유

by 기자김연지

하루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취재원과 밥을 먹는데, 유튜브 얘기가 나왔다.


"제가 너무 좀 유난스럽죠?"

"아니에요, 기자님 정말 잘 생각하신 거예요. 결국은 이 방향으로 갈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괜히 나댄다고 소문만 안 좋게 날까 봐 걱정도 되기도 하고.."


야심 차게 유튜브 채널을 연 것과 달리 막상 유튜브 얘기만 나오면 오히려 위축되는 내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 주셨다.


"뉴욕타임스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 대학생을 인터뷰하곤 엄청 충격 받았대요. '왜 이 뉴스를 보지 못했느냐? 이건 정말 중요한 뉴스였는데' 그때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네요"

"정말 중요한 뉴스라면 어떻게든 제가 봤겠죠"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시절,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는 늘 뉴미디어를 배웠다. 당시 뉴미디어는 UCC였다. 유튜브? 잠깐 언급됐긴 했다. 그때는 이렇게 커질 줄 몰랐겠지.


2006년 당시에도 뉴미디어의 급성장을 다루며 "신문은 죽었다", "TV는 죽었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전쟁'


그러고보면 항상 언론은 죽는 것과 전쟁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전쟁도 마음대로 선포하고. (이 프레임도 모두 생사기로에 놓인 기자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아닐까)


어찌 됐든, 학교에서도 입학하고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이 가야할 길은?’에 대해 수없이 발표하고 고민하고 과제하고 시험을 봤다. 2010년부터 치르기 시작한 언론사 공채에도 ‘뉴미디어 시대 언론의 과제’가 논술 주제였다.


2019년 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 솔직히 내가 언론사에서 하는 일은 입사 연도인 2011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물론 회사에도 뉴미디어센터가 생겼다. 여기는 따로 일한다. 기자들과의 협업이 아니다. 보도국에서 뉴미디어센터를 얘기할 땐 마치 같은 다른 회사 얘기를 하듯 관심도 없고 서로, 하는 것을 못 미더워한다. 비단 우리 언론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다른 언론사 동기들 얘기 들어봐도 하는 다들 사는 얘기는 비슷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변하는 속도마저 빨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저녁 8시만 되면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본다.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본다면, TV 뉴스를 안 본다면, 뉴미디어와의 전쟁을 선포할 게 아니라,

마케팅을 해서 신문을 구독하게 할 게 아니라, 8시 뉴스 앞뒤로 재미있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끼워 넣을 게 아니라, 뉴스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뉴스 소비는 단지 뉴스 보는 시간, 뉴스 보는 곳에서만 변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약 4~50분 분량의 8시 뉴스를 그냥 앵커와 기자가 알려주는 순서대로 쭉 보지 않는다. 뉴스 소비자들은 제목과 썸네일을 보면서 자기가 알고 싶은 것, 궁금한 뉴스들만 골라본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창 논란이지만 내 집을 구하고 싶은 사람은 눈뜨면 부동산 뉴스부터 보고, 스포츠 마케팅 쪽에서 일하는 사람은 호날두 결장 사태에 관한 기사만 찾고. 아이돌 지망생은 그 어떤 뉴스보다 프로듀스 X101 투표수 조작 사태가 제일 궁금한 뉴스다.


아침 뉴스, 저녁뉴스 등 뉴스 순서는 언론사에서 정한다. 데스크 회의에서 부장단들이, 국장이, 앵커가 아이템을 뽑고 뉴스 순서를 정하기 위해 최소 1시간 넘게 언쟁을 한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기사당 원고지 분량, 순서, 크기, 몇 면에 들어가는지 등 "야~ 그게 젤 중요하지" 기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대로 편집한 것이다. 독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게 아니다.


그러니 뭐 어쩔 도리가 있나. 배우고, 훈련받고, 훨씬 전문가라고 불리는 기자보다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현장 사진을 담은 뉴스보다, 일반의 보통의 유튜버 영상 조회수가 더 많을 수밖에. 짧은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내용, 출퇴근 시간이나 혹은 잠들기 전 침대에서 유튜버와 아이컨택을 하며 친구가 말해주듯이 친근하게 얘기해주는 그런 영상을 보는 게 훨씬 편하게 다가와서다.


“언론사의 미래는 유튜브?”란 말이냐 물론, 당연히 정답은 아니다. 모든 기자들이 유튜브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플랫폼이 바뀌고 소비 형태가 바뀌었다는 건 언론사든, 기자든, 정말 사활을 걸고 머리 싸매야 할 문제다. 회사 내 보도국과 편성국과 뉴미디어센터가 경쟁하고 견제할 게 아니다. 이런 데 에너지를 소모할 때가 아니다.


# 덕후는 즐기고 기자는 일한다 ; 유튜브가 통하는 이유


유튜브를 하면서 느끼는 건, 언론은 이제 사양 산업이라는 깨달음과, 기자란 직업이 언제까지 존재할지에 대한 공포였다. 유튜브에 뉴스가 밀리지만, 유튜버에도 기자는 밀리고 있다.


유튜브엔 소위 '덕후'들이 많다. 기자는 '사명감'은 가졌을지라도 덕후는 아니다.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어떤 분야의 덕후라고 해서 반드시 그 출입처를 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자들은 보통 입사와 동시에 사회부 사건팀으로 발령받고, 그 뒤 1~2년 단위로 출입처를 옮겨다닌다. 보도국 안에는 크게 정치/사회/경제/산업/그리고 문화체육...(문화 체육쪽은 정말 더 섬세하게(?) 나뉘는데.. 체육은 종목도 많지, 문화도 그 카테고리가 너무 많아서...다 담지는 못하겠다..)


사회부 안에서도 사건 팀 말로 교육이라든지 법조팀, 복지, 정책/ 사회부를 떠나면 정치부 정당팀, 외교 안보, 청와대/ 경제부에서는 증권, 보험, 카드, 금감원, 금융위, 기재부/ 산업부에서는 부동산, 유통, IT, 재계, 자동차, 항공 등등..


이렇게 무수히 많은 출입처들을 짧게는 6개월, 평균 1년, 길면 2~3년 단위로 옯겨다니다보니 전문성이란 걸 쌓기가 힘들다. 이제 조금 적응하려하면 인사가 난다.


사실 출입처 바뀌고 해당 출입처 취재원들 약속 잡고 인사만 하는데도 3~6개월 가량 걸린다. 보통 사람들은 기자라는 직업이 굉장히 똑똑하고 전문직인줄 알지만 갑자기 터지는 사건 사고 기사 처리하고, 기획 아이템 내고, 가끔 또 다른 부서 파견도 다녀오고 이러다보면 전문성이란 걸 쌓기 힘들다.


하지만 덕후들은 어떤 분야에 꽂혀서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정말 '좋아서' 계속 알고 싶고 그래서 너한테도 너 옆에 있는 너한테도 알려주고 싶고, 내가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는데 우리 함께 놀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다. ‘레고 덕후’는 먹방이나 화장은 못하겠지만 레고만큼은 끝내주게 잘 가지고 놀고 이걸로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다.


IT를 출입하면서 해외 출장도 가고 간담회고 다니다보면 내 전문성은 저절로 쌓일 줄 알았다. 그렇게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유튜브를 하기로 결심하고 IT 테크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난 지금까지 뭐했을까, 이들이 이렇게 IT를, 각종 전자기기를 가지고 놀 때 나는 왜 이렇게 공부하듯이 어렵게만 접근하고 또 그래서 어렵게만 알려주고 있구나..‘나는 지금까지 뭐했을까’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덕후는 즐긴다. 기자는 일한다. 유튜버가 기자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다.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서 기자의 길은 시작됐지만 그 ‘연결고리’는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됐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그리고 유튜브로.


“Broadcast Yourself” 유튜브의 슬로건처럼 유튜브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를 건드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평범하다고 해서, 할말이 없는 게 아니다. 나를 뽐내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인스타가 성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동물이다. 새 물건 사면 자랑하고 싶고, 슬픈 일 있으면 위로 받고 싶고, 대화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기회가 없었다. 친구들을 불러모으기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존재하고, 인스타로 하기엔, 뭔가 허전하다. 영상을 올릴 수 있긴 하지만 1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겠지.


방송국 카메라가 오면 카메라가 켜있든 말든, 일단 그 앞에서 V부터 하고 보는 아이들, 뒤에서 머리를 내밀어보는 사람들, “나도 방송 한 번 타 보자~”는 사람들의 욕구다. 그리고 “엄마, 나 TV 나왔어”라고 자랑한다.


예전에는 이런 기회가 없었지만, 유튜브는 이를 가능케 했다. 유튜브는 “평범해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됐다. 유튜브=가욋일로 치부되는 기자들보다 훨씬 즐겁고 재밌게 영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은 이슈를 다루더라도 지극히 일반인의 시선에서 얘기한다. 그래서 일반의 평범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뭔지, 알고 싶어하는 건 뭔지,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이걸 전하는 게 제일 좋을지 등을 고민한 다음, 영상을 만든다.


가끔 기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 '기사 주제 잡고, 제목 뽑고 들어가기' 취재 가기 전부터 기사는 이미 ‘답정너’다. 현장에서 야마에 필요한 것들만 보고 듣고 취재한다. 그래야 데스크가 좋아하니까. 빨리 취재하고 빨리 퇴근할 수 있으니까. 그 기사의 결과는 뻔하다. 아주 자극적인 기사가 되거나 영혼없는 기사가 되거나 오보가 되거나. 사람들은 똑똑하다. 이런 기사들이, 영상들이 진정성있게 다가갈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이미 텍스트화 된 기사를 영상으로 만든다. 우스개소리로 한 언론사 부장은 영상팀에 석간과 조간을 붙여주며 “영상 뉴스로 만들라고 했다”는 레전드급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튜브 영상은 방송사 영상보다 만들어지는 절차가 대폭 줄었다. 유튜버들은 보통은 혼자 촬영하고, 편집하기에 데스킹을 받거나 타부서와 협업을 하거나 그런 절차가 전혀 없다. 기껏해야 팀 단위로, 혹은 MCN에 속해서 아이템 회의를 하는 것 정도? 후루룩 재빨리 만들고 결과물은 곧바로 유튜브에 올라간다.


하지만 방송 뉴스는 기자의 발제-> 부장의 데스킹-> 데스크 회의 -> 보도국/편성국장 등의 결정-> 카메라 기자와 현장 취재-> 편집 기자 -> 편집 뒤 또다시 데스킹 -> 뉴스 보도 시간까지 대기 ..


중간중간에 여러 조율과정까지 합하면 1인 미디어의 속도를 절대 따라올 수 없다. 물론 당연히, 방송 뉴스는 타이틀에 무게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팩트 체크도 해야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있다. 그런 절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몇 사람의 손을 거쳐가고 영상이 송출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예능은 더하다. 무한도전같은 대박 프로그램이 나오기 위해서는 유재석, 박명수 등 몸값만 몇 천만원씩 하는 유명 연예인을 섭외해야하고 촬영에, 편집에 들어가는 스탭, 이동 시 필요한 차량, 식비, 수십개의 카메라와 조명 등등 한시간 분량의 예능을 편집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유튜버들은 어떤가. 조회수가 몇백만회를 기록하는데 혼자서 얘기하거나 화장하거나 예능감은 보통 연예인들보다 더 뛰어나고 아이디어는 또 어쩜 그리 신선한지, 덩치가 큰 또 기존의 관습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면,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방송사는 절대 위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