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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현장, 혼자보기 아까워

기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온통 영어..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by 기자김연지

2011년 3월, 입사해 수습기간 4개월을 거쳐 사회부에 들어갔고, 2015년 3월 산업부 IT 부서에 명받았다. 만약 IT를 출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채널은 없을지도 모른다.


유튜브를 시작한 당시 출입처는 통신, 단말, 가전, 포털 등으로, 전기로 기술로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기사를 썼다.


IT는 전혀 내 분야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한글 문서, PPT 만드는 게 전부고, 인터넷 검색 말곤 아는 것 전혀 없는 '컴맹'이다. 만지는 것마다 다 고장 내버려서 기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비싼 스마트폰 사서 카톡과 전화, 서핑만 했다. 더구나 스마트폰 탄생 이후 몇 년째 가장 비싼 통신요금을 내고 있던 '호갱'이기도 했다. IT 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기자였다.


이러다보니 산업부로 발령받았지만 주구장창 사회부성 기사만 썼다. IT쪽은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 사건사고 기사만 다루다보니 여기서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좀처럼 감이 오질 않았다.


부서 발령받은 뒤 첫 간담회,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일단 말하는대로 받아치기는 하는데, 아.. 말하는대로도 아니겠다. 처음 듣는 용어다보니까 사실 발음들리는대로?가 맞겠다. 영어인지 콩글리신지, 아님 한국어인데 내가 못 알아듣는건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머리가 새하얘져서 그 쉬운 간담회 기사 하나가지고 몇시간 동안 끙끙댔다.


출입처는 좀 많아야지..

타사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는데 바로 'CBS의 전자신문'이다.


산업부 출입처에는 경제지가 상당히 많다. 우리 회사의 경우엔 산업부 안에 부동산/유통/재계·IT/자동차/항공/정유/화학/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있고 이 넓은 곳을 기자 6~7명이서 나눠 맡는다.


경제지는 IT 중에서도 통신팀에만 예닐곱명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나는 통신 포털 단말 게임 등을 주로하는 IT를 맡으면서 재계 2진, 과기부 2진, 방통위 2진까지 내 몫이었다. 'CBS의 전자신문' 이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산업부서 첫 1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출입처가 워낙 많다보니, 출입처 홍보팀 등 관계자들 만나고 간담회 일정과 분기 실적, 신제품, 신기술 소개, 또 이로 인한 업계 갈등, 사회적 대립 등 터지는 이슈들만 처리하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IT 기자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단말기, 서비스가 나오면 이를 글로 써야 한다. 그나마 스마트폰, AI 스피커 같은 스마트 기기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기라도 하지, 보이지도 않는 신기술들을 글로 풀어내기란 너무나 버겁기만 한 숙제에 불과했다.


기술 용어들은 좀 어려워야지, 업계 전문 용어고, 대부분 영어고, 이런 것들은 한국어로 풀면 더 어렵다. 가장 쉬운 예로 DSLR 카메라. 보통 DSLR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단어를 처음 듣는다고 해도, 스마트폰에서 이미지를 찾아 “이 카메라 말이야~”라고 하면 대부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걸 한글로 풀면, 디지털 싱글 렌즈 리플렉스, ‘디지털 일안반사식 카메라’가 된다. 디지털은 어떻게 한국어로 풀 것인가?


그런데 뭐..어쩔 수 있나. 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기자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결과물인 기사로만 기자를 판단한다. 기사 내용이 부실하면 “저것도 기자라고”, “요즘 기자되기가 가장 쉬운 것 같다”는 악플이 달린다.


모르는 만큼 발품을 팔았고,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찾았다. 이리저리 주워듣고 어깨너머로 보는 것들이 많이 생겼고,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늘 들고다니던 스마트폰을 카메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IT 현장에서 제품이나 기술을 뜻하는 어려운 용어들을 한글로 일일이 풀어가며,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텍스트와 더불어 영상이 있다면 10초만에 이해할 것도 1초면 금방 이해되지 않을까? 역시 옛말은 틀린 게 없다더니. ‘백문이 불여일견’ 동서고금, 시대를 초월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6년, 외국 기자들은 이미 유튜버였다.


그러다 2016년 2월, 해외출장이라는 기회가 왔다. MWC. Mobile World Congress라고 해서 세계 모바일 박람회다. 미국 CES, 독일 IFA와 함께 세계 3대 IT전시회 중 하나다.


사건 사고로 인명피해가 나서 가게 된 출장이 아닌, 이런 신기술 향연이 펼쳐지는, 더구나 글로벌 박람회라니..부담도 컸지만 너무나도 설렜다.


역시나 현장에서 초짜티는 있는대로 다 냈다. 전세계 기업, 바이어, 미디어들이 다 모이는 곳에서 언어도 안통하지만 모두가 내 얼굴에서 '이런 곳은 처음이야'를 읽었을테다.


어리버리 최고봉을 찍었던 첫 출장 경험만 얘기해도 책 한권이 나올 것 같아 일단 접어두겠다. 이 얘기를 하려고 지금 글을 쓰는 건 아니니.


MWC, CES, IFA 같은 글로벌 IT 박람회는, 정말이지 코끼리 다리 만지던 장님이 두 눈을 번쩍 떠 코끼리와 마주하는 듯한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외국 기자들은 모두 ‘유튜버’였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확인을 다 해본 게 아닌지라 물론 그 중엔 기자 명함을 가지지 않은 진짜 유튜버가 있었을 수도 있다.


골자는, 그때부터 외국에선 1인 미디어가 이미 활성화돼있었단 것이다.

https://youtu.be/jQzg4hHWnrE

한국 기자들은 방송 기자 외엔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기자가 전무했다. 방송 기자는 혼자가 아닌, 카메라 기자가 늘 함께했다. 신문 기자들도 스마트폰이 있지만 그걸로 영상을 찍기보단 그저 현장 사진만 찍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만해도 영상을 촬영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외국 기자들은 달랐다. 기자 혼자 삼각대 들고 다니면서 거기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꽂고 마이크를 들고 방송을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현장에서도 시선따위 신경쓰지 않고 멘트를 끊임없이 날렸다.


아무래도 유튜브가 미국 기업이고, 영어권 국가들부터 퍼지다보니까 영향력 자체가 달랐던 것 같긴하다. 우리나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프리카티비가 성행할 때니까.


MWC라는 글로벌 IT 박람회가 준 충격도 컸지만, 세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고 있고, 매체 환경은 더더욱 급변하고 있고, 외국 기자들은 이 흐름에 재빨리 올라탔구나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꼭 이런 세계적인 행사가 아니더라도 IT 업계를 출입하면서 국내 IT 업체들이 여는 간담회나 행사에서 기술의 변화와 또 일상 속에 이미 들어온 신기술들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와도 "당연히 새 폰인데 좋겠지"라며 조금도 궁금하지 않던 내가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듯, 기술이라는 것에 '기대'하게 됐다. 정치도, 정책도 상황에 따라 후퇴하기도 하지만 기술이라는 건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곤 어찌 됐든)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 기대감과 흥분되는 현장을. 신기술과 신제품들의 향연을 나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가는 현장, 반드시 써야 하는 기사, 여기에 영상까지 넣으면 "이해가 훨씬 쉽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지만 좀 더 와 닿지 않을까"


장비도 있지 않나. 어차피 매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으로 현장 사진만 찍지 말고 "영상도 찍어보자" 생각했다. 품은 더 들겠지만, 잘 못 한다고 해서 잘못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기자의 유튜브는 시작됐다.


사실, MWC를 다녀온 뒤부터 유튜브에 대한 고민은 시작됐다. 정말 하고 싶었다. 정작 말할 순 없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기자 1인이 따로 개인 채널을 만들어 유튜브를 하는 선례가 없었기에. 주변 시선이 두려웠다.


지금은 정말 후회한다. 왜 이때 더 과감히 도전하지 못했을까..


늦었기에, 다시는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기자 유튜브를 시작한 지금 더더욱 열정을 불태우려 한다. 더 과감히 도전하고 싶다.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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