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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본 뉴스에 걸리면 좋은 기사일까?

알고리즘, 니가 뭔데 내 기사를 판단해?

by 기자김연지

#포털에 걸려야 좋은 기사?


온라인은 어떨까? 기자들은 크고 작은 단신까지 합해 하루 평균 3~4개의 기사를 쓴다. 기획 기사나 심층 취재 때는 섭외하고 인터뷰하느라 하나도 못 쓸 때도 있지만 출입처에 사건사고가 터지기라도 하면...내가 사람인지 자판기인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사 송고 버튼을 누른 뒤 반드시 하는 게 있다.


네이버와 다음에 들어가서

내 기사가 뉴스판에 걸렸나 확인하기


뉴스 메인에 걸리면 기사 장사(?)는 꽤 잘 한 셈이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뉴스에 걸리면 ‘땡큐’다.


포털에 걸려야만 사람들이 클릭하고, 그래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반응 좋네, 수고했어” 칭찬받는다.


하지만, 도통 모르겠다.

기사를 어떻게 써야 포털에 걸릴 수 있는건데?

어떤 기사가 도대체 포털에 걸리는 건데?


기사 내용보다 제목을 잘 달아야 하는 건지, 그저 운에 맡겨야 하는 건지..


사례자 섭외하느라 전화 수십통 돌리고, 현장 곳곳을 발품파는 등 며칠을 공들인 기사라고 해서 포털에 걸리는 게 아니더라. 출입처에서 나온 보도자료 ‘복+붙’한 기사가 많이 본 기사에 오르기도 한다.


자, 따져보자.

대한민국에 언론사는 지역매체까지 합해서 몇 개나 될까? 그 언론사 안에 기자는 몇 명이나 있을까? 기자들이 하루에 1개씩만 쓴다쳐도 포털에 도배되는 기사의 수는..??


똑같은 제목의 기사가 몇 페이지를 차지한다. 뉴스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어느 매체' 뉴스를 찾아보진 않는다. 그저 제목만 보고 클릭한다. 기사 가치는 클릭 여부에, 혹은 '잘 지은 제목'에 좌우되는 세상이다. (그래, 뭐 제목 잘 짓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포털은 자사의 알고리즘에 대해 “공정하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메인에 노출되는 기사가 얼마나 공들인 기사인지는 가려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많이 본 기사에 오른다고 해서 그 기사는 잘 쓴 기사일까? 아니면 꼭 며칠을 밤새야만 그 기사가 좋은 기사일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건, 포털에 걸려야만 그나마 사람들이 내 기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사를 쓰고 네이버나 다음에 내 기사 걸렸나 확인하고, 걸렸으면 '앗싸~' 하고 안 걸리면 '에이씨~' 하는 현실. 이럴려고 기자가 됐나.


네이버와 다음에게 묻고 싶었다.

“너네가 뭔데 내 기사를 판단해?”


물론 이렇게 물어본 적은 없다. (^^;;) 기자들이 갑질한다지만, 기사가 포털 메인에 걸리길 바라는 기자에게 네이버와 다음은 기자를 철저한 을로 만든다. 기자가 자발적 을질한다고 기사가 노출되는 것도 아니기에 더 처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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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기사는 잘 안걸어주나요? oo랑 00는 엄청 걸어주던데요?”

“저희는 잘 몰라요^^;;;. 다 알고리즘이 하는 거에요”


그놈의 알고리즘. 지금같은 이런 구조에선, 기자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발악을 한들, 포털 뉴스 알고리즘 연산값에 ‘김연지 기자의 기사’만 다 입력해서 노출되도록 AI에게 로비라도 해야하지 않고는 내 기사가 자주 노출될 수 있을까?


특종? 아 물론 좋다. 특종은 기자에게도 엄청난 자부심과 자신감을 준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포털생태계에서는 ‘특종=많이 본 기사’라는 공식 또한 없다.


단독기사, 소위 특종이라는 건, 다른 언론사들보다 중요한 사안을 빨리 취재, 보도한 것이다. 당장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오르기도 하고,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뉴스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잠시다. 이 기사를 본 타사 기자들은 이슈화하기 위해 보도 내용을 재빨리 재탕 보도하거나(?) 이를 더 추가 취재하고 보완해서 기사를 송고한다. 이러하다보니 포털에 걸리는 기사는 계속 뒤바뀐다. 거의 내 기사를 베끼다시피한 기사인데도 제목을 더 ‘섹시하게’ 뽑았다는 이유로 많이 본 기사에 오른다. 그럼 기사를 열심히 취재한 것보다 “왜 제목을 더 잘 뽑지 못했냐” 이런 타박을 받기도 한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는 말도 실감한다. 내가 열심히 쓴 기사를 사람들이 많이 봐줘야, 그리고 피드백을 받아야 기사를 쓴 의미가, 가치가, 보람이 있다. 회사 선배들, 데스크 칭찬을 받기 위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니까.


일이 재미없어졌다. 그토록 오랫동안 꿈꿨던 직업인데, 절실했던 ‘기자’라는 명함을 가졌는데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플랫폼에 한계를 느꼈다. 매일매일 취재하는 게 다르기에,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그런 염증은 없지만, 의욕도 떨어지고, 기사를 송고한 다음 또다시 스마트폰으로 포털을 확인하는 내 자신도 지겹고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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